얼마 전 호주 브리즈번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워홀러(요새는 이렇게 부르나보다. 나 때에는 working holiday maker라고 불렀었는데...) 여대생으로 인해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Working Holiday. 과연 이 프로그램이 그리 위험한 것일까?
2000년 Worlking Holiday Maker로서 호주에 가서 호주 전역을 여행하며 세상을 배우고 내 생애 가장 환상적이었던 시간을 보내고 온 나로서는 지금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꼭 한번 도전해보라고 추천하는 프로그램이다.
Working Holiday는 국가간의 협약에 의해 젊은이들에게 여행과 체험의 기회를 주는 바람직한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말그대로 holiday, 즉 여행 visa이면서 현지를 체험하며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등의 목적으로 일부 working을 할 수 있도록 허가된 visa이다. 잘만 이용한다면 가난한 청춘이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고도 해외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다.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마쳤고, 그 여행이 내 생애 전환점이 된 나에게는 아주 감사한 프로그램이다.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께 먼저 다녀온 사람으로서 당부한다.
(물론 아주 오래 전이라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니 감안하여 참고하시길...)
1. 세마리 토끼를 잡는다? 한마리 토끼만 잡아라!
광고를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다. 여행도 하고,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리 쉽게 가능할까?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영어를 못 하는데 어디에서 일 할껀데?
세 살짜리도 하는 영어를 잘 못한다. 게다가 영국 등 유럽의 영어를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 온 워홀러들이 넘쳐난다. 일자리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은 비영어권 워홀러들이 농장에서 일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다. 말이 필요없는 직업군이 가장 얻기 쉽다. 그러면 돈은 벌 수 있다. 한국의 시급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라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단순 노동이면서 호주 내에서는 저임금 직업들이다.
그러면 비언어적 근무, 즉 농장일이나 청소하면서 영어는 언제 배울껀데?
토마토나 오이나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꾸도 하지 않는다. 설령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에 일을 잡았다고 해도 근무시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까?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 주어진다. 대화를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영어는 언제 어떻게 배우지?
영어도 안 되고 돈도 없고...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여행은 언제 갈껀데?
사람은 불안함을 두려워하는 존재이다. 영어도 '아직' 안 늘었고, 돈도 '아직' 충분하지가 않고... 여행은 엄두도 못낸다.
일단 영어부터 늘리고 나서, 일단 충분히 돈을 확보하고 나서 갈 생각에 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불행히도 그 준비는 영원히 안 된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면 만족할 것인가? 설마 네이티브처럼 되기를 꿈꾸는가? 돈은 얼마만큼 벌면 여행에 충분한 경비가 되는 것일까?
1년이란 시간은 한 마리 토끼만 잡기에도 벅차다. 이 여행에서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워킹 홀리데이비자는 여행을 위한 비자이다. 이 아까운 체험의 기회를 영어, 돈과 맞바꾸지 않으면 좋겠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돈 모아서 학생비자를 받고 가서 열심히 공부할 것을 권한다.
호주에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자기 분야를 만든 후 워킹비자로 취업할 것을 권한다.
특히 쌓이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남의 나라에서 1년간 단순노동만 하다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2. 한국에서의 나는 잊어라
한국에서의 나는 고귀한(?)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애지중지 키우셨고, 교육은 당연히 받았으며 대학생/대학원생, 혹은 전문분야의 직장인이다. 말그대로 고급인력이다. 내가 사는 환경은 늘 깨끗하고 정갈하고, 교통은 항상 편리하다. 또한 한국은 IT강국이다. 어디에서나 인터넷, 스마트폰은 기본이다. 내가 원하는 것, 얻고자 하는 것은 항상 내 주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의 '나'는 모든 사람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니다)
워홀러가 되어 호주에 가는 순간 한국의 나는 한국에 두고 가야 한다.
나는 언어장애(?)가 있는 고급인력이다. 내가 얼마나 뛰어난 지 모르는 그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되는 나를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 게다가 생활은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한다. 우선 먹는 것, 자는 것에도 매일매일 돈이 들어간다.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 때에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지출이 매일 나간다. 발전된 한국의 도시와 달리 호주는 농업 국가이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등 일부 대도시 외에는 모두 시골마을이다. 내주변에 항상 있었던 기본 인프라는 찾아볼 수가 없다.
많은 워홀러들이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 때 농장이나 청소용역 일을 하다가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그래도 한국에서는 꽤 알아주는 사람인데...라고 생각이 들면서 바로 컴백홈한다고 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3개월 안에 반이 돌아가고, 6개월 안에 나머지의 반이 돌아가고, 6개월을 넘긴 사람들 중 일부가 1년을 채운다고 했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워킹 홀리데이가 부정적인 프로그램으로 얘기한다.
그 순간을 버텨야 한다. 나를 내려놓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또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찬스이다.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 그 돈 벌어서 뭐할 것인지 정확한 목표가 있으면 다 지나가는 과정이다.
3. 새로운 것을 경험하라
돈을 벌면서 여행할 수 있다지만 최소한 항공권이라도 사야 한다. 기본적으로 비싼 돈이 드는 여행이다.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굳이 비싼 돈을 주면서 할 이유가 없다.
많은 워홀러들이 초기 3개월 정도 적응기를 위해 랭귀지 스쿨을 등록하고 간다. 가장 안타까운 것이 영어 배운다고 랭귀지 스쿨에 들어가서 수업듣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종로에서 영어학원 듣고 수업끝나면 도서관 가는 것이랑 무엇이 다른가? 어차피 혼자 책 파고 공부하는데...피크닉을 가고 파티에 가도 영어로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으니 소외되는 것이 싫어서 은근히 빠진다. 그리고 또 공부... 굳이 비싼 돈 들여 왜 거기까지 갔을까? 지하철 타고 신촌, 종로만 가도 그 생활 할 수 있는데...
여행 중에도 돈 계산하면서 돈 아낀다고 이것 패스~, 저것 패스~ 하는 이들도 많이 봤다. 저건 한국의 뭐랑 비슷해...저거 비슷한 거 예전에 유럽 여행할 때 해 봤어...저건 해서 뭘해?....그러면 왜 거기까지 왔는데?라고 묻고 싶다. 물론 예산에 맞추는 여행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예산을 계획할 때 거기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 비용은 포함해서 계획할 것을 권한다. 그 때 그 순간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다.
점점 그 의미가 왜곡되어 가고 있는 working holiday 프로그램이 본연의 의미를 되찾고, 좁은 틀 안에서 하루하루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고 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뼈 속까지 이과 체질에 공대를 졸업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며 진작에 영어를 손놓았다. 아니, 처음부터 손잡은 적도 없었다. 당시 공대는 영어의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공대는 영어 못해도 돼'가 늘 하던 얘기였다. 또한 나의 학창시절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해외라는 것은 꿈조차 못꾸던 시절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IMF를 겪으면서 회사가 어수선한 통에 그간 모아둔 돈으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지원했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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