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 01:59

2016년 4월 중국 우전 여행.


동호회에서 함께 우전 수향마을 여행을 떠났다. 

우전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로, 중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는 거의 통용이 되지 않는다. 


우전 서책 안에 숙소를 잡고 산책을 시작하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다. 식사 시간에 딱 걸린 우리는 강가 식당에 자리를 잡으려 했으나 이미 만원이었다. 강가 식당은 물론 강이 보이지 않는 곳의 식당까지 모두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밥먹을 곳을 찾아 헤매다 거의 끝 쪽에 있는 아주 전통적인 중국 식당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안 그래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마을 안에서 이렇게 작은 식당에 말이 통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이 식당은 단품 메뉴가 아닌, 기본 메뉴에 토핑 재료를 고르면 고른 대로 끓여서 만들어 주는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주문하는지 보려고 주문하는 현지인들을 뒤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 젊은 여자 분이 주문을 하는데, 그 과정을 보니 어떻게 주문하는지 대략 알 것 같았다. 그 여자 분은 다른 여자 분과 어린 아이 두 명의 일행이 있었다. 그 분께 주문 방법 확인차 말을 걸었다.


나: (영어로) 영어할 줄 아세요?

그: 네... 조금

나: 어떻게 주문하는 건지 알려주실래요?

그: 아... 그러니까... (다른 일행에게 중국어로) 한국인인데 네가 좀 영어로 도와줘. (나에게 영어로) 쟤가 영어 더 잘해요.


그러자 다른 일행이 오고 이 분은 미안하다며 자리로 간다. 이제부터 '그'는 그 일행이다.


그: 무엇을 도와 드리까요?

나: 메뉴 주문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기본을 고르고 무엇을 얹을지 고르면 돼요.

성질급한 내 일행: 그냥 저기 사진에 있는 것과 같은 거 시켜주세요.


(메뉴판 위에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은 토핑을 거의 다 넣어서 화려하게 찍어놓은 하나의 예였다. 라면 봉지에 있는 '조리예'처럼. 그래서 처음에 사진을 가리키면서 저걸 달라했을 때 없다고 했던 것 같다.) 


그: 아... 저거를...


종업원에게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종업원이 사진과 같은 건 없다하니 센스있는 이 분이 사진에 보이는 것들을 토핑으로 골라서 주문을 넣어 주신다. (알아들을 수 있는 약간의 중국어로 미루어 이런 대화를 한 듯...)


그 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주문을 했고, 그 분은 자리로 돌아가서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는 선불이었나보다.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지고 나와서 보여준다. 잠깐 계산서를 보여주더니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뭐라뭐라 하면서 금액을 올린다. 우리가 뭐지? 하고 들여다 보고 있으니 식사를 하시던 그 분이 다시 벌떡 일어나 우리 쪽으로 오셔서 종업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종업원이 계산서를 보여주니까 뭔가 이상한지 계산을 다시 한 번 하면서 검증까지 해 주신다. 우리 쪽 음식값이 과하게 나온 것 같다. 한참 종업원과 대화를 하더니 우리에게 설명을 해 준다.


그: 432원 나왔어요. (인당 40-50원 정도이다)

나: 네. 감사합니다. (돈을 내고 나서 그에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그: 괜찮아요. (머뭇머뭇...) 그런데 음식값이 조금 많이 나왔어요. 여기가 비싼 집이 아닌데 토핑을 너무 많이 고르셨어요. 우리 가족 먹는 것 보이죠? 우리는 기본에 토핑 2-3개 넣어서 20원 전후예요. 그런데 당신들 음식에는 저 사진에 있는 것이 다 들어갔고 더 고르신 것도 있다고 하네요. (이 분께 도움을 받기 전에 불 위에 끓고 있는 음식을 가리키며 저거랑 같은 것 달라했었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 들어있던 토핑도 모두 주문이 되었단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서 그런 거예요. 당신들을 속이려 한 것이 아니에요.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 분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다. 힘들어 하면서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다. 식사하다 말고 다시 와서 도와주신 것도 고맙고,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바가지 쓰지 않을까 나서서 금액 확인까지 해주신 것도 고마웠다. 의사소통 문제로 발생한 해프닝에 설령 오해하지 않을까 굳이 설명을 덧붙여주신 것에 정말 고마웠다. 따뜻함이 흐르고 기분이 아주 좋아졌고, 중국의 이미지가 한결 좋아졌다. 이런 분들이 진정한 민간 외교관이 아닌가 싶다. 


무언가 드리고 싶었는데 가진 것이 없어서 가방 속의 말랑카우를 톨톨 털어서 그 집 아이들에게 주고 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좋은 추억 하나 더합니다...



Posted by TravelGirl
2016. 3. 12. 02:38

2000년 호주 워킹홀리데이.


서호주의 퍼스(Perth)에서 시작한 여행이 3개월 쯤 접어들 때쯤, 돈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돈을 벌지 않으면 더이상의 여행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 무렵 호스텔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얻은 정보에 따라 카나나라(Kununurra)에 멈추었다. 농장이 많은 카나나라에는 일을 구하기 쉽다고 했다. 


카나나라에 내려서 일단 호스텔 2박을 예약했다. 2박이 내가 가진 돈으로 끊을 수 있는 한계였다. 청소와 관리 등 호스텔의 일을 도와주면서 숙박을 무료로 제공받는 경우도 있어서 3일째 되는 날은 그런 기회를 물어봐야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기본적인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마트로 갔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도 막막하긴 해서 내심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마트로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한 달 여 전에 남쪽 맨지멉(Manjimup)에서 같은 숙소에 있었던 일본애를 만났다.


그: 어? 너?? 여기서 또 만나네? 반갑다~

나: 어? 너도 여기에 왔어?

그: 나 일찾아서 왔어. 돈 벌어야 해.

나: 너도? 나도 ㅎㅎ 반갑다.

그: A랑 B랑 같이 온거야? 아까 마트에서 걔네들 만났는데...

나: 그래? 걔네도 여기에 있어? 걔네 어느 숙소에 있는지 알아?

그: 응...xxx캬라반 파크에 있다 했어.

나: 고마워. 만나러 가봐야겠다. 넌 어디에 있어?

그: 난 yyy에 있어. 나중에 또 보자.

나: 또 보자.


A랑 B는 맨지멉에서 같은 숙소에 있었던 한국인 커플이다. 이후 헤어져서 각자의 여행길에 올랐다. 이미 워킹홀리데이 경험이 있었던 A가 여자친구 B와 같이 다시 와서는 중고차를 구입하고 텐트를 싣고 다니며 여행하는 중이었다. 차가 있는 덕에 기본적으로 쌀과 각종 양념들을 싣고 다니는 장점이 있었다.


마트 장보기를 끝내고 그 쪽 숙소로 찾아가서 그들과 반가운 재회를 했다.


나: 짜잔~ 여기에 왔구나~!!

그: 어?? 여기서 또 보네? 하하하... 반갑다...하하...

그녀: 우리 여기에 있는줄 어떻게 알았어? 신기하다 하하...

나: 아까 길에서 일본애 걔를 만났어. 걔가 너희들 만났다고 가르쳐줬어.

그녀: 그래? 우리도 아까 걔를 마트에서 보고 신기했는데... 하하...

그: 어디에 있어?

나: 나 aaa 호스텔. 그런데 이틀 끊었는데 돈이 떨어져서 더이상은 못끊어. 일 찾아야 하는데.

그: 너도야? 우리도 돈 떨어져서 여기서 어떻게든 일 해야해. 여기서 돈 벌지 않으면 더이상 움직이지도 못해.

나: 나도나도... 하하...

그: 일단 숙소를 이리로 건너와. 우리 오면서 한국 여자애 한 명 만나서 같이 있는데 걔 텐트에서 잘 수 있을꺼야.

나: 정말? 그럼 감사하지.

그: 돈은 얼마나 남았어? 먹을 것은 가지고 있어?

나: 얼마 안 남았어. 먹을 것은 아까 조금 샀고 커피 한 병 있고.

그: 커피 있다고? 콜! 우린 쌀과 양념있어. 우리 일 구할 때까지 일단 살림 합치자. 


그는 커피홀릭이었으나 돈이 없어서 기호품 구입은 보류당했다. 나는 커피 한 병을 들고 다니며 흐리게 타서 물 대신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딜이 성사되어 살림을 합치기로 했는데... 우리 셋이 가진 돈을 다 꺼내니 45불이었다.


한참 멍하던 우리. 모두가 웃고 말았다. 한참동안을 웃었다.


그: 돈도 없으면서 커피는 마시냐? 하하하.....  

나: 기름값도 없이 불안해서 어떻게 다녔냐? 하하하...


'함께'가 된 우리는 돈이 없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고, 앞날이 걱정되지도 않았고 마냥 즐거웠다.

그 전 주에 불어닥쳤던 허리케인의 여파로 수확이 지연되어 한 주 동안은 일이 없던 덕분(?)에 캬라반 파크 내 수영장에서 하루종일 놀고, 마을과 주변의 자연을 즐기면서 여행도 할 수 있었다.


일 주 후, 카나나라에서 가장 큰 농장에 운좋게 일자리를 잡은 우리는 6주 정도 재미있게 일을 했고, 다음 여행을 위한 경비를 충분히 만들어서 떠날 수 있었다. 



+ 이후에도 몇 번 더 경제적 위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나든, 좋은 사람을 만나든, 좋은 기회를 만나든 위기 탈출의 방법이 언제나 하나 이상은 있었다. 절대 산 입에 거미줄이 쳐지지 않았다. 여행 초기에는 불안한 마음과 걱정이 컸는데, 산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이후로는 그런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히려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또한 신세지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고의 제약이 많았었는데, 여행을 통해 때로는 신세져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할 수 있을 때에는 도움을 주고, 필요할 때는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 여행을 통해 배운 소중한 자산이다.

Posted by TravelGirl
2015. 9. 26. 00:26

2015년 10월. 태국 북부를 여행하는 중.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동남아시아는 오토바이라는 교통수단이 아주 대중적이다.

오토바이를 타 본 적 없는 나에게는 어디를 가든지 도시를 벗어나면 약간의 아쉬움이 따라다녔다. 주변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은데 차를 렌트 하자니 비싸기도 하고, 길도 잘 모르는 시골에서의 운전이 썩 내키지 않고, 택시를 계속 타고 다니자니 배낭여행의 예산으로는 만만치 않았다.


치앙마이를 거쳐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만난 작은 마을 빠이(Pai).

예전에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고 하나 영화에 등장하고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더 이상 조용하지만은 않다.


마을은 아주 작아서 슬슬 걸어다니거나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로 충분하다. 하지만 마을 외곽 주변에 퍼져 있는 곳들을 돌아보려면 교통이 필요하다. 택시는 하루종일 대절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나가기는 쉬우나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고, 언덕지고 굴곡이 심한 길은 자전거로는 무리다. 당연히 오토바이로 눈이 간다.


버스 터미널 옆에는 오토바이 대여점이 크게 성업 중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대여를 한다.


빠이 도착 첫 날. 

마을을 모두 둘러보았다. 마을은 하루면 충분히 돌아본다. 주변을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오토바이를 도전하고 싶으나 아무래도 겁이 난다. 여기저기 깁스하고 긁히고 까진 상처에 붕대감고 밴드 붙이고 다니는 여행자들이 꽤 많이 보이는데 99% 오토바이 사고이다.


두번째 날.

다행히도(?) 비가 온다. 오토바이를 빌릴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서 비가 오히려 반갑다. 어쨌든 비오면 못 타니까.

점심을 먹은 현지 식당 바로 옆에 여행사가 있어서 여행사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밥 먹으면서 옆에 서 있는 유럽 아이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 너 오토바이 탈 줄 알아?

그: 응. 어제 빌려서 근처 돌아보고 오늘 치앙마이로 넘어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거야. 왜?

나: 오토바이 타고 싶은데... 타 본 적이 없어서 고민중이야

그: 타 봐. 아주 쉬워. 그걸 왜 고민을 해?

나: 위험하잖아

그: 자전거 탈 줄 알아?

나: 응

그: 자동차 운전할 줄 알아?

나: 응

그: 그럼 뭘 고민해? 자전거보다 훨씬 쉬어. 자동차 오락하는 것과 비슷해

나: 처음 타보는데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그: 너 기계같은 거 다루는 거 익숙해? 여자들이 조작에 익숙하지 않긴 한데...

나: 응. 기계는 잘 다뤄. 내 직업은 엔지니어야

그: 그럼 뭘 고민해? 그냥 가서 빌려. 넌 바로 탈 수 있을거야. 난 확신해. 단, 너희 나라 도로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 것을 더 많이 신경써야 할거야 (태국은 차가 좌측통행이다)

나: 그래 한 번 해 보자.


하룻동안의 고민과 그 아이의 확신과 응원에 힘입어 내일 오토바이를 빌리기로 한다. 비오는 오늘은 어차피 못 빌리니까. 

숙소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찾는다. 오토바이 운전법을 열심히 글로 배운다. 불안한 마음에 낮에 보고 찍어놓고 온 오토바이 모델명을 찾아 조작법을 숙지한다.


다음 날. (세번째 날)

긴장된 마음으로 오토바이 대여점으로 간다. 대여점 직원 언니는 참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일한다.


나: 오토바이 작은 것 하나 빌리께. 오토로.

그: 탈 줄 알아? 타 본 적은 있어?

나: 응. (처음이라고 하면 안전상의 이유로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그러면 조작법은 안 알려줘도 되겠네.

나: 아... 나 타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 그런데 조작법 한 번 쭉 설명해 줄래? 혹시나 해서...얘기한 번 들으면 기억이 다 날꺼야

그: 오케이. (조작법을 쭉 설명한다. 어제 글로 배운 것이 다시 한 번 기억난다)

나: (올라앉으며) 고마워. 나 간다...


긴장 잔뜩에 글로만 배운 것을 처음 실습하려니 부릉부릉, 덜컹덜컹.... 감이 잡힐 듯 하는데 대여점 언니가 달려서 쫓아온다.


그: 잠깐만. 너 진짜 탈 줄 알아? 확실해?

나: 그럼~ 너무 오래되었다고 했잖아. 이제 다 기억났어. 괜찮을 거야.


실제로 오토바이는 생각보다 쉬웠다.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월등히 둔하고, 균형감각도 둔해서 자전거도 썩 잘 타는 편이 아닌데 오토바이는 훨씬 쉽다. 타는 것은 금방 익숙해졌는데, 어제 만난 유럽 아이의 말처럼 도로의 반대 쪽을 달려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습관이 무서운 것이 신경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달리고 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오토바이를 타고 빠이 캐년(Pai Canyon), 커피 인 러브(Coffee in Love), 타빠이 철교(Memorial Bridge) 등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밤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언제 또 탈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할 줄 아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후... 

빠이에서 매홍쏜(Mae Hong Son)으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만난 스페인 여자아이. 이마는 찢어져서 꿰맸고, 무릎은 다 까져서 붕대를 붙였고 왼쪽 다리는 구부리지도 못한다. 


나: 오토바이 사고야?

그: 응. 처음 타는 거였거든.

나: 나도 어제 처음 타봤는데 생각보다 쉬웠어. 다행히 사고도 없었고.

그: 나도 잘 타고 마을로 돌아오다가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할 지를 보느라 바닥이 패인 것을 몰랐어. 오토바이 때문이 아니라 길을 몰라서 넘어진 거야.

나: 처음 타면서 이래서 넌 이제 다시 타기 겁나겠다.

그: 아니. 다음에는 더 잘 탈 수 있을 것 같아. 넘어져 봤으니까 온전히 길에 집중하면서.  

나: 아...



+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뒤늦게나마 배운 오토바이로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한 가지 늘었다. 이것만으로도 나의 빠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새로운 일, 특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더 많이 몸을 사리게 된다. (물론 오토바이 사고는 그 결과가 과하게 처참하니 조심, 또 조심은 당연하다) 한 번 넘어졌다고 멈추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겁없는 젊음이 참 예쁘다.

Posted by TravelGirl
2014. 10. 11. 03:08

2000년 호주를 여행하는 중, 에얼리 비치(Airlie Beach)에서 생긴 일.

 

늦은 오후에 에얼리 비치에 도착해서 이전 마을을 떠날 때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 리셉션을 통해 다음날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에얼리 비치 투어를 예약했는데, 때마침 가지고 있던 현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호스텔 주인은 예약을 해 주면서 투어 비용을 다음날 투어 가이드에게 직접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배낭여행객들은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나 역시 현지 커먼웰스 은행(Commonwealth bank)의 계좌에 돈을 넣어 놓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현금을 인출해서 썼다.)

 

다음날 투어는 새벽 일찍 시작하는 거라 돈을 찾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날이 이미 어두워졌지만 마을 구경도 할 겸, 호스텔 주인에게 ATM의 위치를 물어서 슬슬 걸어 나왔다.

 

저 멀리 커먼웰스 은행 지점과 ATM이 보여서 저기구나...하고 가는데, 가까이 갈수록 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e)의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마트의 카트를 가지고 은행의 유리벽을 힘껏 내려쳐서 부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은행은 경보도 울리지 않고 조용했다. 강화 유리라서 제법 튼튼해서 한번에 깨지지 않으니 계속 카트를 들어 내리치고 있었다.

 

모든 가이드북에서, 여행자와 호주 사람들의 얘기에서, 심지어 호주 방송에서도 애보리진은 사회에 문제만 일으키는 위험한 부족이었다. 어지간하면 피해가라고 권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이것은 위험한 상황이다. 심지어 은행 앞이고 저쪽은 폭력과 더불어 범법행위를 하는 중이다. 머리 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지? 저 아이가 나를 봤을까? 지금 확 뒤돌아 가면 저 아이가 어떻게 나오려나?'

 

'그냥 길을 가는 중이었던 양 자연스레 지나가까? 내가 은행 가는 길이었다는 것이 티나려나?'

(은행은 길 끝에 있어서 은행을 지나가면 반대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나 티나는 설정이 될 것 같았다)

 

'그냥 못 본 척 무시하고 조용히 돈 찾아서 가까? 근데 여기서 돈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겠지?'

 

고민하면서도 내가 겁내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한 걸음씩 가까이 가고 있었다. 머리 속은 복잡한 채로.

 

그 때.

그 아이가 나를 부른다. 헉. 나를 본게 분명하다.

 

그: 헤이~

나: 왜?

그: 넌 어디에서 왔니?

나: 한국

그: 오~ 한국! 반가워!! 우리 악수하자.

(손내밀어 악수했다)

그: 난 아시아 사람들이 너무 좋고, 특히 한국인들이 정말 좋아.

나: 왜?

그: 똑똑하잖아. 백인들은 유색인종을 너무나 무시해. 그런데 아시아인들, 특히 너희 한국인들은 유색인종인데도 똑똑하잖아. 그래서 백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잖아. 난 그게 너무 좋아.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스스로 백인들을 혼내주는 방법을 찾았어. 그게 이거야. 잘 봐.

(다시 카트를 들어서 은행 유리를 친다)

나: (너무 놀라서 거의 비명) 그만! 하지마!!

그: 왜? 난 백인을 혼내주고 있는거야.

나: 그만해. 이건 아닌거 같아.

그: 괜찮아

 

그 때 경찰이 왔다. 은행 자체에서 경보는 울리지 않았지만, 경찰서로는 경보 상황이 전달된 것 같았다.

그는 순순히 경찰차에 올라탔다.

 

그: (경찰차에 올라타며) 잊지마. 너희는 최고야!

나: (뭐라 할지 몰라) ... 고마워

경찰: 너 다치지 않았니?

나: 아니

경찰: 저 아이가 너를 위협하거나 폭력을 쓰지 않았니?

나: 아니.

경찰: 확실하니? 이제 괜찮으니 겁먹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

나: 전혀. 저 아이는 나에게 아주 친절했어. 정말 괜찮아.

 

경찰이 아이를 태우고 사라졌다.

멍하니 있다가 이제야 한숨 돌리고 정신 차리고 무사히 ATM에서 돈을 찾아 숙소로 돌아왔다.

 

그 아이는... 그저 자신들을 무시하는 백인의 시선이 싫어서 나름대로 소심한 1인 시위를 했다. 그리고는 곱게(?) 잡혀갔다.

심지어 백인들을 상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들을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백인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태생으로 인한 한계에 대한 한(恨)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그 아이는 범죄자였을까? 물론 은행을 부수는 행위 만으로는 충분히 범죄자였다. 하지만, 어린 그 아이가 왜 그런 행동까지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경찰도, 백인들도 한 번 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정상참작까지도.

 

나에게서 애보리진에 대한 편협한 시선을 날려보내 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 세상에 처음부터 위험한 사람은 없다. 편견을 버리고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면 모두가 '사람' 그 자체일 뿐이다.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티가 난다면 나도 절대 기분 좋을 리 없다.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그냥 사람은 사람이다.

물론... 뒤돌아 생각하면 참으로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는데 나의 타고난 인복이 제대로 한 몫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Posted by TravelGirl
2013. 11. 30. 14:19

얼마 전 호주 브리즈번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워홀러(요새는 이렇게 부르나보다. 나 때에는 working holiday maker라고 불렀었는데...) 여대생으로 인해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Working Holiday. 과연 이 프로그램이 그리 위험한 것일까?

2000년 Worlking Holiday Maker로서 호주에 가서 호주 전역을 여행하며 세상을 배우고 내 생애 가장 환상적이었던 시간을 보내고 온 나로서는 지금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꼭 한번 도전해보라고 추천하는 프로그램이다.

 

Working Holiday는 국가간의 협약에 의해 젊은이들에게 여행과 체험의 기회를 주는 바람직한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말그대로 holiday, 즉 여행 visa이면서 현지를 체험하며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등의 목적으로 일부 working을 할 수 있도록 허가된 visa이다. 잘만 이용한다면 가난한 청춘이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고도 해외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다.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마쳤고, 그 여행이 내 생애 전환점이 된 나에게는 아주 감사한 프로그램이다.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께 먼저 다녀온 사람으로서 당부한다.

(물론 아주 오래 전이라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니 감안하여 참고하시길...) 

 

1. 세마리 토끼를 잡는다? 한마리 토끼만 잡아라!

광고를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다. 여행도 하고,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리 쉽게 가능할까?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영어를 못 하는데 어디에서 일 할껀데?

세 살짜리도 하는 영어를 잘 못한다. 게다가 영국 등 유럽의 영어를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 온 워홀러들이 넘쳐난다. 일자리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은 비영어권 워홀러들이 농장에서 일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다. 말이 필요없는 직업군이 가장 얻기 쉽다. 그러면 돈은 벌 수 있다. 한국의 시급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라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단순 노동이면서 호주 내에서는 저임금 직업들이다.

 

그러면 비언어적 근무, 즉 농장일이나 청소하면서 영어는 언제 배울껀데?

토마토나 오이나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꾸도 하지 않는다. 설령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에 일을 잡았다고 해도 근무시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까?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 주어진다. 대화를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영어는 언제 어떻게 배우지?

 

영어도 안 되고 돈도 없고...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여행은 언제 갈껀데?

사람은 불안함을 두려워하는 존재이다. 영어도 '아직' 안 늘었고, 돈도 '아직' 충분하지가 않고... 여행은 엄두도  못낸다.

일단 영어부터 늘리고 나서, 일단 충분히 돈을 확보하고 나서 갈 생각에 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불행히도 그 준비는 영원히 안 된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면 만족할 것인가? 설마 네이티브처럼 되기를 꿈꾸는가? 돈은 얼마만큼 벌면 여행에 충분한 경비가 되는 것일까?

 

1년이란 시간은 한 마리 토끼만 잡기에도 벅차다. 이 여행에서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워킹 홀리데이비자는 여행을 위한 비자이다. 이 아까운 체험의 기회를 영어, 돈과 맞바꾸지 않으면 좋겠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돈 모아서 학생비자를 받고 가서 열심히 공부할 것을 권한다.

호주에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자기 분야를 만든 후 워킹비자로 취업할 것을 권한다.

특히 쌓이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남의 나라에서 1년간 단순노동만 하다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2. 한국에서의 나는 잊어라

한국에서의 나는 고귀한(?)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애지중지 키우셨고, 교육은 당연히 받았으며 대학생/대학원생, 혹은 전문분야의 직장인이다. 말그대로 고급인력이다. 내가 사는 환경은 늘 깨끗하고 정갈하고, 교통은 항상 편리하다. 또한 한국은 IT강국이다. 어디에서나 인터넷, 스마트폰은 기본이다. 내가 원하는 것, 얻고자 하는 것은 항상 내 주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의 '나'는 모든 사람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니다)

 

워홀러가 되어 호주에 가는 순간 한국의 나는 한국에 두고 가야 한다.

나는 언어장애(?)가 있는 고급인력이다. 내가 얼마나 뛰어난 지 모르는 그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되는 나를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 게다가 생활은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한다. 우선 먹는 것, 자는 것에도 매일매일 돈이 들어간다.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 때에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지출이 매일 나간다. 발전된 한국의 도시와 달리 호주는 농업 국가이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등 일부 대도시 외에는 모두 시골마을이다. 내주변에 항상 있었던 기본 인프라는 찾아볼 수가 없다.

 

많은 워홀러들이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 때 농장이나 청소용역 일을 하다가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그래도 한국에서는 꽤 알아주는 사람인데...라고 생각이 들면서 바로 컴백홈한다고 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3개월 안에 반이 돌아가고, 6개월 안에 나머지의 반이 돌아가고, 6개월을 넘긴 사람들 중 일부가 1년을 채운다고 했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워킹 홀리데이가 부정적인 프로그램으로 얘기한다.

그 순간을 버텨야 한다. 나를 내려놓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또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찬스이다.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 그 돈 벌어서 뭐할 것인지 정확한 목표가 있으면 다 지나가는 과정이다.

 

 

3. 새로운 것을 경험하라

돈을 벌면서 여행할 수 있다지만 최소한 항공권이라도 사야 한다. 기본적으로 비싼 돈이 드는 여행이다.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굳이 비싼 돈을 주면서 할 이유가 없다.

 

많은 워홀러들이 초기 3개월 정도 적응기를 위해 랭귀지 스쿨을 등록하고 간다. 가장 안타까운 것이 영어 배운다고 랭귀지 스쿨에 들어가서 수업듣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종로에서 영어학원 듣고 수업끝나면 도서관 가는 것이랑 무엇이 다른가? 어차피 혼자 책 파고 공부하는데...피크닉을 가고 파티에 가도 영어로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으니 소외되는 것이 싫어서 은근히 빠진다. 그리고 또 공부... 굳이 비싼 돈 들여 왜 거기까지 갔을까? 지하철 타고 신촌, 종로만 가도 그 생활 할 수 있는데...

 

여행 중에도 돈 계산하면서 돈 아낀다고 이것 패스~, 저것 패스~ 하는 이들도 많이 봤다. 저건 한국의 뭐랑 비슷해...저거 비슷한 거 예전에 유럽 여행할 때 해 봤어...저건 해서 뭘해?....그러면 왜 거기까지 왔는데?라고 묻고 싶다. 물론 예산에 맞추는 여행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예산을 계획할 때 거기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 비용은 포함해서 계획할 것을 권한다. 그 때 그 순간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다.

 

 

 

점점 그 의미가 왜곡되어 가고 있는 working holiday 프로그램이 본연의 의미를 되찾고, 좁은 틀 안에서 하루하루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고 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뼈 속까지 이과 체질에 공대를 졸업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며 진작에 영어를 손놓았다. 아니, 처음부터 손잡은 적도 없었다. 당시 공대는 영어의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공대는 영어 못해도 돼'가 늘 하던 얘기였다. 또한 나의 학창시절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해외라는 것은 꿈조차 못꾸던 시절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IMF를 겪으면서 회사가 어수선한 통에 그간 모아둔 돈으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지원했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Posted by TravelGirl
2012. 12. 4. 00:21

※ 2012년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합격 후 카페에 올린 면접후기


안녕하세요.

2012년 2차 관광통역 안내사 영어면접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다가 이 카페에 들어와서 가입했고요, 합격했답니다.

지금 준비하시는 분들, 다음 기회를 노리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뒤늦게나마 제 경험 나눕니다.

저는 필기/실기 모두 독학했어요.

 

저의 시험 과정 공유합니다. (워낙 다양하여 다른 분들은 다른 경험하셨을 수도 있어요.)

 

1. 시험대기

시험장에 도착하면 전체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 시간이 되면 몇개의 대기실로 나누어서 배치를 받습니다.

나누어진 대기실에서 번호를 뽑아서 면접실(면접관)과 실제로 면접볼 순서를 정합니다.

이번에 영어는 세 개의 면접실로 나누어 진행되었어요.

몇번째 면접실에 몇번째 순서인지를 지정받습니다.

 

2. 면접전후

순서대로 세 명씩 지정 면접실 앞에서 기다립니다. 나머지는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

대기실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안 됩니다. 혹시 먼저 면접이 끝난 일행과 통화해서 질문 내용을 알아볼까봐 그러는 거라네요.

차례가 가까워 오면 지정 면접실 앞에 앉아서 기다리다 내 순서가 되면 들어갑니다.  

면접이 끝나면 나오자마자 곧장 집으로(건물 밖으로) 나갑니다. 대기자와 대화 못합니다.

 

3. 면접관

세 분 계셨고, 모두 한국인이셨어요. 가볍게 인사하면 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바로 질문을 시작하고요, 물론 영어로 물어보십니다. 얘기를 굉장히 주의깊게 잘 들어주십니다.

 

4. 면접

면접관 한 분이 2~3 개씩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가 받은 질문입니다. (공유해도 되는거죠? 혹시 문제 유출 뭐 이런거에 걸리는거 아니겠죠?^^)

1) Option tour란 무엇인가?

2) Option tour와 shopping에 불만이 있는 tourist는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3)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는 무엇인가?

4) 사물놀이란 무엇인가?

5) 서울에 있는 성(fortress)에 대해 설명하시오.

6) 서비스란 무엇인가?

7) 관광상품이 일반 상품과 다른 점은?

 

5. 면접시간

면접시간은 1인당 10분 안쪽인데요, 보통 5~7분 사이에 끝납니다.

질문은 면접관 한 분당 2~3개로 정해진 것 같고요, 설명을 얼마나 길게 하는지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운영하시는 분의 말씀으로는 통계적으로 면접에 걸린 시간과 합격률은 상관이 없다네요.

면접 시간이 길수록 합격 가능성이 높다는 항간의 소문은 루머일 뿐이라네요.

 

 

후기...(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범위는 넓고, 직장인이다보니 시간은 없고 해서 준비가 난감했었어요.

유네스코 지정 유산은 꼭 외우라 해서 문화재청 영문홈피 들락거리는데 단어 찾아보다 시간 다 가네요. 이건 관광 안내사 준비인지 토플 준비인지 헷갈리는 정도...ㅡㅡ;;

시험 전날 뒤적뒤적 인터넷 바다를 헤매다가 한 분의 포스팅에 있는 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면접'이다. 프리젠테이션이 아니다"

 

- 면접입니다. 미소잃지말고 긴장한 티 너무 내지 마세요.

 

- 달달 외우지 마세요. 한번 막히면 머릿속 하얘져서 이후는 ....

 

- 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을 영어로 준비하는데 스트레스 받지 말고 먼저 한국어로 가능한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내용을 알면 아는 영어 조합해서 설명이라도 할 수 있는데 단어 하나하나에 치중하게 되면 그 단어 생각 안나면 끝입니다.

 

- 혹시 모르는 질문이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모른다 끝내지 말고 평정을 유지하고 뭐라도 말하세요.

저는 서울의 성을 설명하라는 질문에 '서울에 성이 있었나?' 턱 막혔어요. 유네스코 지정유산이라고 수원화성만 신경썼거든요. 살짝 농담 섞어 말하면서 동시에 머리를 계속 굴리다가 결국은 끝까지 생각이 안 났네요.

'Fortress는 한국말로 '성'이라고 해서 서울의 성이라고 하면 저는 castle이 먼저 생각납니다. 물론 지금 질문은 그 성이 아닌 줄 잘 압니다. 서울에 어떤 성이 있는지 지금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성이 있었다면 수도인 도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무식을 통통 튀겼지요. 그런데 왠지 느낌에 이 때 점수를 잘 받은 것 같아요.(완전 저의 생각임^^) 머리는 계속 당황해서 굴러갔지만 입은 쉬지 않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나름 재치있는 대답이었다고 뒤돌아서 생각도 했구요..(자뻑?ㅋ)

 

- 인터넷에서 많이 조언하시는 내용 중...

'정중한 표현을 써라''완전한 문장을 말하라' -- 하나도 생각 안 납니다. 평소 언어습관 그대로 나옵니다. 평소에 익히시길...

'면접 끝나고 완료 인삿말(?)을 하고 나와라' -- 끝났다는 안도감에 'thank you' 한 마디 말고는 나가야겠다는 생각뿐... 

 

정말 '인터뷰'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발표하는 시간이 아니었답니다.

그만큼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설명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긍정의 에너지(!) 이런 요소들이 더 높게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의와 매너, 웃음과 진심은 필수입니다.

 

 

쓰다보니 장황해졌네요. 제가 면접 전 기출자료와 면접 과정에 대한 정보를 찾느라 보낸 시간들이 기억나서리^^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경험한 것에만 한정된 내용이고요, 지극히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회원님들 합격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에 후기 남깁니다.

모두 화이팅요!!!

 

Posted by TravelGi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