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태국 북부를 여행하는 중.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동남아시아는 오토바이라는 교통수단이 아주 대중적이다.
오토바이를 타 본 적 없는 나에게는 어디를 가든지 도시를 벗어나면 약간의 아쉬움이 따라다녔다. 주변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은데 차를 렌트 하자니 비싸기도 하고, 길도 잘 모르는 시골에서의 운전이 썩 내키지 않고, 택시를 계속 타고 다니자니 배낭여행의 예산으로는 만만치 않았다.
치앙마이를 거쳐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만난 작은 마을 빠이(Pai).
예전에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고 하나 영화에 등장하고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더 이상 조용하지만은 않다.
마을은 아주 작아서 슬슬 걸어다니거나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로 충분하다. 하지만 마을 외곽 주변에 퍼져 있는 곳들을 돌아보려면 교통이 필요하다. 택시는 하루종일 대절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나가기는 쉬우나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고, 언덕지고 굴곡이 심한 길은 자전거로는 무리다. 당연히 오토바이로 눈이 간다.
버스 터미널 옆에는 오토바이 대여점이 크게 성업 중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대여를 한다.
빠이 도착 첫 날.
마을을 모두 둘러보았다. 마을은 하루면 충분히 돌아본다. 주변을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오토바이를 도전하고 싶으나 아무래도 겁이 난다. 여기저기 깁스하고 긁히고 까진 상처에 붕대감고 밴드 붙이고 다니는 여행자들이 꽤 많이 보이는데 99% 오토바이 사고이다.
두번째 날.
다행히도(?) 비가 온다. 오토바이를 빌릴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서 비가 오히려 반갑다. 어쨌든 비오면 못 타니까.
점심을 먹은 현지 식당 바로 옆에 여행사가 있어서 여행사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밥 먹으면서 옆에 서 있는 유럽 아이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 너 오토바이 탈 줄 알아?
그: 응. 어제 빌려서 근처 돌아보고 오늘 치앙마이로 넘어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거야. 왜?
나: 오토바이 타고 싶은데... 타 본 적이 없어서 고민중이야
그: 타 봐. 아주 쉬워. 그걸 왜 고민을 해?
나: 위험하잖아
그: 자전거 탈 줄 알아?
나: 응
그: 자동차 운전할 줄 알아?
나: 응
그: 그럼 뭘 고민해? 자전거보다 훨씬 쉬어. 자동차 오락하는 것과 비슷해
나: 처음 타보는데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그: 너 기계같은 거 다루는 거 익숙해? 여자들이 조작에 익숙하지 않긴 한데...
나: 응. 기계는 잘 다뤄. 내 직업은 엔지니어야
그: 그럼 뭘 고민해? 그냥 가서 빌려. 넌 바로 탈 수 있을거야. 난 확신해. 단, 너희 나라 도로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 것을 더 많이 신경써야 할거야 (태국은 차가 좌측통행이다)
나: 그래 한 번 해 보자.
하룻동안의 고민과 그 아이의 확신과 응원에 힘입어 내일 오토바이를 빌리기로 한다. 비오는 오늘은 어차피 못 빌리니까.
숙소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찾는다. 오토바이 운전법을 열심히 글로 배운다. 불안한 마음에 낮에 보고 찍어놓고 온 오토바이 모델명을 찾아 조작법을 숙지한다.
다음 날. (세번째 날)
긴장된 마음으로 오토바이 대여점으로 간다. 대여점 직원 언니는 참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일한다.
나: 오토바이 작은 것 하나 빌리께. 오토로.
그: 탈 줄 알아? 타 본 적은 있어?
나: 응. (처음이라고 하면 안전상의 이유로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그러면 조작법은 안 알려줘도 되겠네.
나: 아... 나 타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 그런데 조작법 한 번 쭉 설명해 줄래? 혹시나 해서...얘기한 번 들으면 기억이 다 날꺼야
그: 오케이. (조작법을 쭉 설명한다. 어제 글로 배운 것이 다시 한 번 기억난다)
나: (올라앉으며) 고마워. 나 간다...
긴장 잔뜩에 글로만 배운 것을 처음 실습하려니 부릉부릉, 덜컹덜컹.... 감이 잡힐 듯 하는데 대여점 언니가 달려서 쫓아온다.
그: 잠깐만. 너 진짜 탈 줄 알아? 확실해?
나: 그럼~ 너무 오래되었다고 했잖아. 이제 다 기억났어. 괜찮을 거야.
실제로 오토바이는 생각보다 쉬웠다.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월등히 둔하고, 균형감각도 둔해서 자전거도 썩 잘 타는 편이 아닌데 오토바이는 훨씬 쉽다. 타는 것은 금방 익숙해졌는데, 어제 만난 유럽 아이의 말처럼 도로의 반대 쪽을 달려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습관이 무서운 것이 신경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달리고 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오토바이를 타고 빠이 캐년(Pai Canyon), 커피 인 러브(Coffee in Love), 타빠이 철교(Memorial Bridge) 등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밤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언제 또 탈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할 줄 아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후...
빠이에서 매홍쏜(Mae Hong Son)으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만난 스페인 여자아이. 이마는 찢어져서 꿰맸고, 무릎은 다 까져서 붕대를 붙였고 왼쪽 다리는 구부리지도 못한다.
나: 오토바이 사고야?
그: 응. 처음 타는 거였거든.
나: 나도 어제 처음 타봤는데 생각보다 쉬웠어. 다행히 사고도 없었고.
그: 나도 잘 타고 마을로 돌아오다가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할 지를 보느라 바닥이 패인 것을 몰랐어. 오토바이 때문이 아니라 길을 몰라서 넘어진 거야.
나: 처음 타면서 이래서 넌 이제 다시 타기 겁나겠다.
그: 아니. 다음에는 더 잘 탈 수 있을 것 같아. 넘어져 봤으니까 온전히 길에 집중하면서.
나: 아...
+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뒤늦게나마 배운 오토바이로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한 가지 늘었다. 이것만으로도 나의 빠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새로운 일, 특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더 많이 몸을 사리게 된다. (물론 오토바이 사고는 그 결과가 과하게 처참하니 조심, 또 조심은 당연하다) 한 번 넘어졌다고 멈추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겁없는 젊음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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