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6. 02:26

배낭여행을 떠나면 저렴한 숙소를 찾아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일이 많습니다. 꼭 가격 때문이 아니더라도 친구를 만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일부러 게스트하우스를 찾기도 합니다. 특히 여러 명이 쓰는 방에서 침대 한 칸을 빌리는 도미토리(dormitory)형 숙소를 찾는다면, 여러 명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만큼 지켜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서로서로 몇 가지만 지키면 센스있는 룸메이트, 내 집 같은 숙소가 될 수 있습니다.


1. 공용 물품/공간은 공.유.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카메라 등 요새 여행에는 다양한 전자기기가 함께 하기 때문에 충전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콘센트는 제발 공유해 주세요. 휴대폰은 콘센트에서 빼는 순간부터 배터리가 무섭게 줄어듭니다. 그래서인지 계속 꽂아놓는 사람들이 많은데, 콘센트는 공용입니다. 공유해야 합니다. 또한 함께 쓰는 화장실/샤워실, 공용 주방이 있는 숙소에서의 식기나 조리용 집기는 모두가 함께 쓰는 것입니다. 우리집의 내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염두해 두세요.


2. 저녁 시간에는 조용히! 

밤시간, 새벽시간에 도착하게 되면 절대 불켜지 말고 조용히 들어와서 일단 자야합니다. 모두들 자고 있는데 부시닥거리며 그 시간에 짐정리하고, 샤워까지 하는 사람들은 정말 짜증납니다. (물론 샤워장이 저~~~멀리 떨어져 있으면야 그나마 나을수도...) 또한 여행의 즐거움에 밤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은 늦게 들어온 것만으로도 소음입니다. 그 시간에 씻고 자겠다고 부스럭거리거나, 놀고 난 여흥이 남아서 서로 속닥거리지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습니다. 미처 못다한 이야기나 다 풀지 못한 흥은 숙소에 들어오기 전에 정리하고 오세요. 


3. 휴대폰은 무음으로

조용한 방안에서 울리는 휴대폰은 정말 짜증납니다. 가능하면 무음, 꼭 받아야 하면 진동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특히 아침에 울리는 알람! 꼭 끄든지 진동으로 하든지. 일어나는 시간이 모두 다른데 남의 알람에 깨면 미쳐버립니다. 본인의 알람에 남들은 다 깼는데 자기만 못 듣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도미토리에서 아침 알람은 반드시 꺼주세요. 시간 맞춰 일어나야 하면 진동으로 알람 해놓고 베개 밑에 두고 자는 것도 방법입니다.


4. 남의 물건은 절!대! 손대지 말자.

방안 다른 사람의 물건(샴푸, 치약 등 소모품)은 물론,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도 내 것이 아니면 절!대! 손대지 않아야 합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숙소의 주방이나 냉장고에서 양념이나 소스, 음료 등을 아주 조금 필요하다고 임의로 빌려쓰는(?) 경우가 흔히 일어납니다. 조식을 제공하는 숙소라면 체크인할 때 무엇무엇이 free인지 주인이 잘 설명해 줄 것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다른 여행자가 쟁여놓은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면 아예 손대지 않아야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숙소 주인이나 해당 물건의 주인에게 물어보고 부탁해야 합니다.


5. 늦게까지 시간 보내려면 공동의 공간으로 Go!

일찍 자기 아쉬워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책을 보거나, 내일의 계획을 짜거나 하려면 침대 등을 켜놓는 대신 Common room 등 공용 공간으로 이동하세요. 방은 침실입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라 하여도 내가 켜놓은 불이 타인의 숙면을 방해할 수도 있고, 사각거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가 모두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6. 뒷정리는 깨끗이!

내가 사용한 흔적을 남기지 말아 주세요. 특히 공동 주방, 화장실, 욕실 사용 후에는 나의 사용 흔적을 지워야 합니다.


7. 방안 대화는 조용히

우리끼리의 즐거운 대화가 방문을 통해, 혹은 벽타고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화는 공용 공간에서 끝내야 합니다. 여러 명이 같이 여행하면서 도미토리 방 하나를 통째로 우리끼리 사용할 때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방 안에 우리만 있으니 개인실처럼, 호텔방처럼 사용합니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소가 생각보다 벽이 얇습니다. 우리의 대화와 웃음 소리가 옆방에는 소음으로 다 넘어갑니다. 


8. 냉장고에 음식 보관하려면 꼭 이름써서~

공용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려면 꼭 이름과 체크아웃 날짜를 같이 써서 넣습니다. 그래야 남들도 손 안 댈 것이고, 실수로 두고 나온 음식이 내가 떠난 후 냉장고에 남아서 마냥 숙성되는 일이 없어집니다.


9. 귀중품은 알아서 보관

귀중품 잃어버리면 우선 내 기분이 망가집니다. 아주 중요한 물건을 분실한 것이면 남은 여행을 모두 망칩니다. 괜찮다, 괜찮다 해도 괜찮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같은 방 사람들이 모두 순식간에 용의자로 변합니다. 서로 찝찝해집니다. 룸메이트들끼리도 나는 아니니까 쟤일까?라는 생각에 서먹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 귀중품은 알아서 챙겨야 합니다. 조심, 조심, 또 조심이고 모두 자신의 책임입니다. 작은 자물쇠 하나 들고 다니면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습니다.


여행에서의 숙소는 또 하나의 집~! 몇가지 에티켓만 지켜준다면 모두가 즐거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TravelGirl
2017. 1. 31. 00:05

여행을 계획하면 대부분 거쳐가는 선택의 기로가 있습니다.


패키지 여행이냐 vs. 자유여행이냐.


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주제가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에는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만큼 심각한 고민입니다. 


패키지 여행과 자유여행.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더 좋을까요?


패키지 여행

출발부터 도착까지 항공, 숙박, 식사, 현지교통을 포함한 모든 일정을 여행사가 관리하는 상품입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아주 편리한 상품이지요. 


여행사에서 계약 관계에 의해 단체 구매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입니다. 여행자에게 가장 골치아픈 문제 중 하나인 현지의 이동수단을 해결해 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 지, 어디에 갈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며 설명해 주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여행지에서 돌발상황과 변수 발생 시 현지를 잘 아는 사람의 적극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의지가 됩니다. 또한 음식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적절히 맞추어진 현지식과 한식을 골고루 제공하므로 즐거운 여행을 도와줍니다.


반면, 나의 의지나 선호도와 상관없이 계획에 포함된 모든 곳을 정해진 시간만큼 머물러야 합니다. 더 머물고 싶은 곳이 있어도 시간이 되면 서둘러 떠나야 하고, 그다지 관심없는 곳도 반드시 들러서 계획된 시간만큼 머물러야 합니다. 전날 여행에 피곤하더라도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저렴한 상품일 수록 중간중간 쇼핑센터를 들러야만 합니다.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일행을 만나느냐에 따라 여행 전체의 분위기가 좌우될 수 있습니다. 특히 쇼핑센터에서 많이 사지 않는다고, 옵션 투어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표정이 바뀌는 가이드를 만나거나, 일행 중 투덜이나 시비거는 사람이 있으면 여행 내내 유쾌하지 않습니다. 

(* 쇼핑센터를 들르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만, 저렴한 상품을 선택했다면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행 상품의 기본 가격은 정해져 있을 텐데, 고객은 그 가격을 돈으로만 지불하든(= 쇼핑이 없는 비싼 여행 상품), 돈과 시간(= 저렴한 상품 + 쇼핑센터에 들르는 시간)으로 지불하든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저렴한 상품을 선택하고 쇼핑에 불평하는 것은 나에게 유리한 것만 취하겠다고 하는 심리로만 해석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 심한 경우가 많으니 예약 전에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 장점: 저렴한 가격. 알찬 일정. 준비과정이 쉬움. 전문 가이드 동반. 일행이 있음. 사고 발생 시 의지할 곳이 있음.

- 단점: 선택할 수 없는 정해진 일정. 쇼핑의 의무. 동행(가이드, 일행)에 따라 분위기 좌우

- 추천: 유적지/문화유산 여행 시. 여행이 처음인 사람. 여행을 준비할 시간이 없는 사람. 외로움을 타는 사람.  



자유여행

출발부터 도착까지 항공, 숙박, 식사, 현지교통을 포함한 모든 일정을 직접 준비하는 여행입니다. 


가장 큰 매력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나만의 여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에만 가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어느 날 여행이 정말 피곤했다면 다음 날은 푹 쉬는 일정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일정은 여행 중에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어쩌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에 등장하지 않는 보물같은 장소를 발견하면 머물다 가면 됩니다. 운이 좋게 딱 그 때에만 하는 축제나 공연 등의 행사를 만나면 일단 즐기고 다음 일정을 조정하면 됩니다. 각지에서 여행 온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현지 문화를 가까이 느낄 기회도 좀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렴한 항공과 숙박을 찾아 엄청난 손가락 품을 팔아야 하고, 일정 만들려면 현지 공부도 많이 해야 합니다. 비용은 비쌀 수도 있고, 싸게 할 수도 있는데, 여행의 의도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하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단기여행을 패키지 여행보다 낮은 비용으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만이 더 나은 점일 것입니다. 중장기 여행이라면 비용을 조정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서 자유여행이 유리합니다. 단, 패키지 여행에서 제공하는 그 항공(보통 국적기)에 그 수준의 호텔을 알아본다면 패키지가 절대적으로 우월합니다. 개인은 절대 그 가격으로 예약할 수 없습니다. 자유여행의 비용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항공과 숙소인 만큼 저렴하게 하려면 저가항공이나 외항사를 이용하고, 숙소의 급을 낮추어야 합니다. 현지에서의 이동도 생각해야 할 부부입니다. 현지에서 어떤 교통수단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아봐야 하고, 일본처럼 교통비가 비싼 동네에서는 동선이 길다보면 전체 교통비 지출이 상당합니다. 유적지나 문화유산은 아는 만큼 보이는데, 그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내가 아는 만큼만 보고 오게 됩니다. 특히 돌발상황 발생 시에는 영사관에 연락을 하든 경찰에 신고를 하든 낯선 곳에서 모든 일을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 장점: 나만의 여행. 여행일정의 유연성.

- 단점: 충분한 준비과정 필요.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하고 해결해야 함. 비용의 폭이 넓으나 높을 가능성이 많음.

- 추천: 시간 여유가 있는 여행(중장기 여행). 많이 경험하고픈 사람들의 배낭여행. 목적이 뚜렷한 여행.  



이렇게 패키지 여행과 자유여행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유여행을 한다고 하면 정말 여행하는 것 같고, 왠지 여행 능력자 같고, 더 멋있어 보이고,

패키지 여행을 한다 하면 그냥 관광객 같고, 어르신들 중심의 이벤트 같기도 하여 심지어 젊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쭈볏거리면서 자신없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단지 여행의 형태가 다를 뿐이니, 나의 준비상태와 예산, 여행의 의도와 목적을 고려하여 그에 맞는 여행을 선택하고 즐거운 여행을 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여행을 동경합니다. 저도 자유여행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볼 것을 권장합니다.

다만, 자유여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돌발상황에 대한 순발력과 대처능력,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꼭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처음은 어렵습니다만, 이 또한 여행을 계속하다보면 늘게 되는 능력치이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Posted by TravelGirl
2017. 1. 26. 19:21

해외여행을 꿈꾸는 첫 시작은 동경입니다.. 

TV에서 봤던 멋진 풍경, 그 곳에 한 번 다녀왔던 사람들의 부풀린 자랑을 보고 들으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마음이 아무리 무럭무럭 자라나도 선뜻 결심은 서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있어서 망설이게 하거든요. 그 때에는 아주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냥 저질러 보자.


어렵게 어렵게 마음을 먹고 나니 이제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다음 단계는 더 어렵습니다. 어디로 가지? 며칠이나 가야하지? 돈은 얼마나 들려나? 말도 안 통할텐데...휴...

고민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다시 잠시 멈칫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때 무엇보다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일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취향인가입니다.


여행은 다니는 것 vs 쉬는 것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구경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경험하려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자가 있습니다. 이런 여행자에게 하루종일 바닷가나 리조트에서 아무 계획없는 시간을 주고 놀라고 하면 "여기까지 와서 왜 '가만히' 있어?라고 하면서 무엇이라도 하려 합니다. 그런 여유는 꼭 이 바다가 아니라도, 꼭 이 호텔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고 싶어서 부지런히 다닙니다.


반면, 호텔이나 리조트, 바닷가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거나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가 있습니다. 명소들은 사진으로 이미 봤는데 굳이 일부러 가까이 가서 보거나 안에 들어가서 보거나 하지 않아도 됩니다. 평소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는데 여행지에 와서까지 부지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이 여유를 즐기고 싶고, 좋을 뿐입니다.



많이 보는 것 vs 깊게 보는 것

오랫동안 고민하고 결심한 만큼, 쉽게 가지 못하는 만큼, 지금 다녀오면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만큼 온 김에 다 보고 가려고 바쁘게 여기저기 움직이는 여행자가 있습니다. 한 곳에서 보고 사진찍고, 얼른 다른 곳으로 옮겨서 보고 사진찍고, 또 얼른 옮겨서 보고 사진찍고...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대부분의 패키지 여행이 이런 식으로 진행합니다.)


반면, 몇 군데만 골라서 한 곳을 보더라도 깊게 보는 여행자가 있습니다. 가고픈 곳만 골라서 가고, 그 곳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머뭅니다. 여행지에서 유명하다는 곳 뿐만 아니라, 구석구석 드러나지 않은 곳까지 탐방을 합니다. 카페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공원에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한다기 보다는 잠깐 동안이지만 그 마을 사람들처럼 일상생활을 하며 살아봅니다. 여행사 프로그램이나 다른 인터넷 블로그에서 소개되지 않은 나만의 사진과 이야기를 가득 채워옵니다.



남들 하는 것 모두 vs 내가 관심 있는 것만

나의 평소 관심사와 상관없이 여행지 현지의 관광자원에 맞추어 여행하는 여행자가 있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지만 마드리드에 갔으니 프라도 미술관은 꼭 들러야 하고, 뮤지컬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브로드웨이에 갔으니 꼭 한 편 봐야합니다.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시즌에 유럽에 갔으니 축구장에 꼭 가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통하는 선택입니다. 나의 평소 관심사는 아니지만 여기가 이 것으로 유명하니 여기에 온 이상 이건 꼭 해 봐야'만' 하는 것입니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일 위주로 찾아다니는 여행자가 있습니다. 피카소 미술관,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이 아무리 유명해도 나의 관심사가 아니니 굳이 가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야시장에 가거나, 맛집 탐방을 하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등 하고싶은 일을 합니다. 사람들이 "거기까지 갔는데 거길 안 가봤어?"라고 말하면 "내 관심사가 아니니까. 한국에서도 안 가는 곳인데 뭐..."라고 당연하게(!) 답을 합니다.



편리한 도시 vs 자연 그대로의 오지

어디를 가나 도시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습니다. 근사한 레스토랑부터 패스트푸드점까지, 작은 편의점부터 백화점까지, TV에서 보던 근사한 숙소,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늦게까지 운행하는 버스나 지하철 등등 여행하기에 아주 편리합니다. 큰 도시들은 때로는 비슷한 모습이라 여기가 거기인 듯, 거기가 저기인 듯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도시 취향의 여행자에게는 이 화려함과 편리함이 매력입니다. 


시골은 기본적으로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중교통도 별로 없고 근처에 작은 가게조차 없기도 합니다. 관광지가 아닌 곳에는 근사한 숙소를 찾기 어렵고, 동네의 숙소는 나름 깨끗하기는 해도 낡은 티는 어쩔 수 없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다른 곳에 가면 볼 수 없는, 개발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 펼쳐집니다. 사람들 인심은 순박하고 따뜻합니다. 이 맛에 시골을 여행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있고,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여행에 취향이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취향은 일상생활의 취향이나 성격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어쩌면 직접 떠나서 겪어보기까지 스스로도 본인 취향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다니다가 낯선 곳에서, 낯선 상황에서, 어쩌면 극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 전에 잠시 내가 어떤 취향인지를 먼저 생각해 본다면 훨씬 더 즐거운 여행을 만들 수 있습니다. 힘들여, 시간들여, 돈들여 간 여행에서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그 귀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남에게 말할꺼리를 만들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자랑을 목적으로 가는 분들도 있겠지요) 남의 눈치를 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에 대해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일 뿐이지 그 사람이 여행을 잘 모르거나 잘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행은 잘하고 못하고로 평가하는 주제가 아닙니다.


단,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새로운 일을 아예 배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여지껏 내가 몰랐던 세상에서 나와 아주 잘 맞는 일을 우연히 발견하는 보석같은 일을 언제든 만날 수 있거든요. 


평소에 관심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예 배척하던 일들을 여행을 핑계로 경험하고 나서 급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 나의 세상이 한 뼘 넓어집니다. 반면 관심없는 것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나의 관심사에 집중하면 뿌듯하고 만족스런 여행이 됩니다. 그러면 나의 세상이 한 뼘 깊어집니다.


여행이 처음이신가요? 취향을 잘 모르겠나요? 그러면 한 번 씩 다 해보세요. 해보니 만족스러운 여행이 본인의 취향입니다. 본인 취향을 알고 있더라도 가끔은 그에 반하는 일탈 여행을 해 보세요. 또 다른 재미가 분명히 있습니다. 


Posted by TravelGirl
2016. 11. 6. 00:45

"패키지 말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데 영어를 못해서 못 가겠어요"


해외로 자유여행,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 하면서도 외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결국은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습니다. '외국어, 특히 여행가는 그 나라의 언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라 물으면 '그래도 영어라도...'라는 답이 바로 돌아옵니다. 언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미 결정된 생각은, 이미 떨어진 자신감은 바뀌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못해서


여행에서 외국어가 얼마나 중요할까요? 정말 여행의 '필수' 요소일까요?

그렇다면, 명절 때 뉴스에 등장하는 인천공항에 모여있는 모두가 외국어 능력자일까요?


먼저 국내 여행을 상상해 봅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울릉도로 여행을 갑니다. 집에서 강릉이나 포항으로 가서 배를 타고 갈 것입니다. 미리 예약해 놓은 (혹은 가서 찾아서)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검색한 맛집을 찾아 (아니면 눈앞에 보이는 식당 중 골라서) 밥을 먹습니다.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저녁에 들어와 숙소에서 휴식을 합니다. 이 여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대화를 할까요? 반드시 대화를 해야하는 상황이 얼만큼 있을까요? 혹시 대화를 한다해도 어려운 이야기가 오가는 심도있는 대화가 이 속에 얼마나 들어 있을까요?

특히 가족, 친구 등 일행과 여행을 한다면 타인과 할 얘기가 생각보다 별로 없습니다. 우리끼리만 놀면 됩니다. 또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몸짓과 숫자로만 나누는 대화도 은근히 많습니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숙소에 체크인은 여권만 내밀면 알아서 처리하고 키를 내어 주고, 키에 쓰인 숫자의 방에 올라가고, 식당에서는 사진을 보고 음식 주문하고 계산서에 보여지는 숫자를 보고 돈내면 됩니다. 외국어의 어려움이 끼어들 틈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물론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안다면 여행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더 편안하게, 더 쉽게 다닐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더' 편안하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른다고 해서 여행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쉬워진다는 것이지 언어를 모르는 여행이 어렵다는 것은 아닙니다.



외국어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강조를 하면 듣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는 영어를 하니까 그 심정을 몰라"


네. 순수하게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학창 시절에 영어를 완전히 포기했었지만 지금은 영어를 좀 합니다. 100% 다 알아듣지는 못하고, 유창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의사소통은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영어를 여행을 하면서 배웠습니다. 학교다닐 때 일찌감치 포기했던 영어 덕분에 그 누구보다 기본 영어 단어가 부족하고 문법도 딸리면서 YES, NO, THANK YOU와 숫자 밖에 셀 수 없을 때 첫 해외여행을 했습니다. 그것도 미치도록 과감하게 워킹 홀리데이로 1년을 계획하고 생애 첫 비행기를 탔더랍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긴 합니다.) 영어를 못 하는 줄 이미 자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못 한다는 것을 호주 현지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1년을 살았고, 그 동안 얻은 것은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영어와 외국인에 대한 익숙함이었습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이 더이상 낯설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언어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뒤늦게 영어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영어로 숫자만 세었던 과거에도, 적당히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는 지금에도 변함없는 생각은 외국어는 여행의 필수 요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받아들이는 분들은 영어를 하니까 그 심정을 모른다고 하더이다. 여전히 아닌 것 같은가요?


추가로, 영어도 영어권 나라에서나 큰 장점이 됩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이고, 스페인이나 그리스 등 유럽국가를 여행할 때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은 도시나 마을이 많았습니다. 한국어(1.0)와 영어(0.5)의 1.5개국어를 하지만 전혀 필요없었습니다. 영어조차도 여행을 보다 쉽게 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만능키는 아닙니다.



인삿말과 숫자는 그 나라의 언어로 미리 알고 가자 


그렇다고 모든 언어를 배울 수는 없습니다. 3박4일의 여행을 위해 일본어를, 중국어를 마스터 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속성 여행 외국어의 팁을 드리자면, 인삿말과 숫자를 알고 가는 것입니다. 


예, 아니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1, 2, 3, 4, 5, 6, 7, 8, 9, 10


인삿말은 처음보는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고, 숫자는 시간과 돈과 관련된 일들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여행하는 나라 언어로 이것만 미리 알고 가면 여행이 훨씬 쉬워집니다. (물론 이것을 몰라도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외국어는 여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분들이면 누구나 모두가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Posted by TravelGirl
2016. 10. 23. 23:26

여.행.

해.외.여.행.

배.낭.여.행.


이 단어들 참 거창합니다. 모두가 원하고 동경하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합니다. 

명절이나 연휴 때마다 공항은 출국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하고, 누구나 가는 것 같은데 내 얘기는 아닙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여행가나 블로그가 소개된 신문기사에는 어김없이 댓글이 달립니다.

"배부른 소리한다" "저것도 여유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먹고사는 일에 바쁜 직장인한테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런 비현실적인 기사로 위화감을 조성하지 말라"라는 분노에 찬 댓글도 있습니다. 


물론 기사에는 대단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어떻게 저런 결심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저러고도 비용감당이 되나... 돈이 좀 있는 분이긴 하구나...하고 은근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인가요? 남들한테는 흔해 보이는 일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돈과 시간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과 '시간'입니다. 어지간해서는 한꺼번에 오지 않는 이 두 가지가 항상 나의 발목을 잡습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둘 다 없는 경우는 대부분이어도 둘 다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둘 다 가지신 분들도 저 멀리 어딘가에 계시겠지요. 내 주변에 없을 뿐이지요...)


그런데, 돈을 얼만큼 모으면 드디어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기꺼이 떠날까요?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시간은 또 어떤가요? 직장인들이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보통 주말(토, 일) 이틀에 어쩌다 공휴일이 붙거나 금요일 하루 휴가내면 길어야 2박3일입니다. 여름휴가나 명절 연휴에나 조금 더 긴 휴가를 만들 수 있지만, 내가 쉴 수 있을 때에는 남들도 모두 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비싸고 항공권이나 숙소를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나만 이런 것 아닙니다. 다들 그렇습니다. 돈 많고 시간도 많은 사람은 평범한 우리 중에는 매우 드물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쯤되면 남들은 어떻게 가는지 궁금해집니다. 다들 나랑 같은 처지라면서 남들은 어떻게 가는 걸까요?


"그냥" 갑니다.


돈 모아서 여유 있을 때 떠나자고 미루면 평생 못 떠납니다. 

여행은 당연히 경제사정에 적지않은, 정확히는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즐겁게 놀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려면 댓가가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동안 덜 먹고 덜 쓰고 인내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금을 모아야 합니다. 문득 훌쩍 떠났다면 놀 때에는 좋으나, 돌아오자마자부터 다음 달, 그 다음 달, 몇 달 동안 긴축재정에 돌입해서 그 댓가를 치뤄야 합니다. 잠깐의 즐거움이 나의 일상생활과 경제사정에 미치는 후폭풍을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아주 당연합니다. 

 

시간은 없으면 없는 대로, 가까운 곳부터 잠깐잠깐 다녀오면 됩니다. 일본, 중국 등 가까운 나라에 많이들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시간에 맞추어 장소를 정하고,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정하면 됩니다. 


다들 그렇게 여행을 떠납니다.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도 앉아서 떠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나만 떠날 수 없는 백만가지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지 말고, 당장 결심만 하면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여건'이라는 것은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있는 여건에서 쥐어 짜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값싸고 실속있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불행히도 그 방법들은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시작부터 하고 한 번 두 번 계속 다니다 보면 분명히 눈에 보입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언제, 어디로 갈까 결심부터 하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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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avelGirl
2016. 5. 1. 01:59

2016년 4월 중국 우전 여행.


동호회에서 함께 우전 수향마을 여행을 떠났다. 

우전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로, 중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는 거의 통용이 되지 않는다. 


우전 서책 안에 숙소를 잡고 산책을 시작하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다. 식사 시간에 딱 걸린 우리는 강가 식당에 자리를 잡으려 했으나 이미 만원이었다. 강가 식당은 물론 강이 보이지 않는 곳의 식당까지 모두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밥먹을 곳을 찾아 헤매다 거의 끝 쪽에 있는 아주 전통적인 중국 식당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안 그래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마을 안에서 이렇게 작은 식당에 말이 통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이 식당은 단품 메뉴가 아닌, 기본 메뉴에 토핑 재료를 고르면 고른 대로 끓여서 만들어 주는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주문하는지 보려고 주문하는 현지인들을 뒤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 젊은 여자 분이 주문을 하는데, 그 과정을 보니 어떻게 주문하는지 대략 알 것 같았다. 그 여자 분은 다른 여자 분과 어린 아이 두 명의 일행이 있었다. 그 분께 주문 방법 확인차 말을 걸었다.


나: (영어로) 영어할 줄 아세요?

그: 네... 조금

나: 어떻게 주문하는 건지 알려주실래요?

그: 아... 그러니까... (다른 일행에게 중국어로) 한국인인데 네가 좀 영어로 도와줘. (나에게 영어로) 쟤가 영어 더 잘해요.


그러자 다른 일행이 오고 이 분은 미안하다며 자리로 간다. 이제부터 '그'는 그 일행이다.


그: 무엇을 도와 드리까요?

나: 메뉴 주문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기본을 고르고 무엇을 얹을지 고르면 돼요.

성질급한 내 일행: 그냥 저기 사진에 있는 것과 같은 거 시켜주세요.


(메뉴판 위에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은 토핑을 거의 다 넣어서 화려하게 찍어놓은 하나의 예였다. 라면 봉지에 있는 '조리예'처럼. 그래서 처음에 사진을 가리키면서 저걸 달라했을 때 없다고 했던 것 같다.) 


그: 아... 저거를...


종업원에게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종업원이 사진과 같은 건 없다하니 센스있는 이 분이 사진에 보이는 것들을 토핑으로 골라서 주문을 넣어 주신다. (알아들을 수 있는 약간의 중국어로 미루어 이런 대화를 한 듯...)


그 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주문을 했고, 그 분은 자리로 돌아가서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는 선불이었나보다.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지고 나와서 보여준다. 잠깐 계산서를 보여주더니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뭐라뭐라 하면서 금액을 올린다. 우리가 뭐지? 하고 들여다 보고 있으니 식사를 하시던 그 분이 다시 벌떡 일어나 우리 쪽으로 오셔서 종업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종업원이 계산서를 보여주니까 뭔가 이상한지 계산을 다시 한 번 하면서 검증까지 해 주신다. 우리 쪽 음식값이 과하게 나온 것 같다. 한참 종업원과 대화를 하더니 우리에게 설명을 해 준다.


그: 432원 나왔어요. (인당 40-50원 정도이다)

나: 네. 감사합니다. (돈을 내고 나서 그에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그: 괜찮아요. (머뭇머뭇...) 그런데 음식값이 조금 많이 나왔어요. 여기가 비싼 집이 아닌데 토핑을 너무 많이 고르셨어요. 우리 가족 먹는 것 보이죠? 우리는 기본에 토핑 2-3개 넣어서 20원 전후예요. 그런데 당신들 음식에는 저 사진에 있는 것이 다 들어갔고 더 고르신 것도 있다고 하네요. (이 분께 도움을 받기 전에 불 위에 끓고 있는 음식을 가리키며 저거랑 같은 것 달라했었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 들어있던 토핑도 모두 주문이 되었단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서 그런 거예요. 당신들을 속이려 한 것이 아니에요.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 분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다. 힘들어 하면서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다. 식사하다 말고 다시 와서 도와주신 것도 고맙고,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바가지 쓰지 않을까 나서서 금액 확인까지 해주신 것도 고마웠다. 의사소통 문제로 발생한 해프닝에 설령 오해하지 않을까 굳이 설명을 덧붙여주신 것에 정말 고마웠다. 따뜻함이 흐르고 기분이 아주 좋아졌고, 중국의 이미지가 한결 좋아졌다. 이런 분들이 진정한 민간 외교관이 아닌가 싶다. 


무언가 드리고 싶었는데 가진 것이 없어서 가방 속의 말랑카우를 톨톨 털어서 그 집 아이들에게 주고 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좋은 추억 하나 더합니다...



Posted by TravelGirl
2016. 3. 12. 02:38

2000년 호주 워킹홀리데이.


서호주의 퍼스(Perth)에서 시작한 여행이 3개월 쯤 접어들 때쯤, 돈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돈을 벌지 않으면 더이상의 여행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 무렵 호스텔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얻은 정보에 따라 카나나라(Kununurra)에 멈추었다. 농장이 많은 카나나라에는 일을 구하기 쉽다고 했다. 


카나나라에 내려서 일단 호스텔 2박을 예약했다. 2박이 내가 가진 돈으로 끊을 수 있는 한계였다. 청소와 관리 등 호스텔의 일을 도와주면서 숙박을 무료로 제공받는 경우도 있어서 3일째 되는 날은 그런 기회를 물어봐야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기본적인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마트로 갔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도 막막하긴 해서 내심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마트로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한 달 여 전에 남쪽 맨지멉(Manjimup)에서 같은 숙소에 있었던 일본애를 만났다.


그: 어? 너?? 여기서 또 만나네? 반갑다~

나: 어? 너도 여기에 왔어?

그: 나 일찾아서 왔어. 돈 벌어야 해.

나: 너도? 나도 ㅎㅎ 반갑다.

그: A랑 B랑 같이 온거야? 아까 마트에서 걔네들 만났는데...

나: 그래? 걔네도 여기에 있어? 걔네 어느 숙소에 있는지 알아?

그: 응...xxx캬라반 파크에 있다 했어.

나: 고마워. 만나러 가봐야겠다. 넌 어디에 있어?

그: 난 yyy에 있어. 나중에 또 보자.

나: 또 보자.


A랑 B는 맨지멉에서 같은 숙소에 있었던 한국인 커플이다. 이후 헤어져서 각자의 여행길에 올랐다. 이미 워킹홀리데이 경험이 있었던 A가 여자친구 B와 같이 다시 와서는 중고차를 구입하고 텐트를 싣고 다니며 여행하는 중이었다. 차가 있는 덕에 기본적으로 쌀과 각종 양념들을 싣고 다니는 장점이 있었다.


마트 장보기를 끝내고 그 쪽 숙소로 찾아가서 그들과 반가운 재회를 했다.


나: 짜잔~ 여기에 왔구나~!!

그: 어?? 여기서 또 보네? 하하하... 반갑다...하하...

그녀: 우리 여기에 있는줄 어떻게 알았어? 신기하다 하하...

나: 아까 길에서 일본애 걔를 만났어. 걔가 너희들 만났다고 가르쳐줬어.

그녀: 그래? 우리도 아까 걔를 마트에서 보고 신기했는데... 하하...

그: 어디에 있어?

나: 나 aaa 호스텔. 그런데 이틀 끊었는데 돈이 떨어져서 더이상은 못끊어. 일 찾아야 하는데.

그: 너도야? 우리도 돈 떨어져서 여기서 어떻게든 일 해야해. 여기서 돈 벌지 않으면 더이상 움직이지도 못해.

나: 나도나도... 하하...

그: 일단 숙소를 이리로 건너와. 우리 오면서 한국 여자애 한 명 만나서 같이 있는데 걔 텐트에서 잘 수 있을꺼야.

나: 정말? 그럼 감사하지.

그: 돈은 얼마나 남았어? 먹을 것은 가지고 있어?

나: 얼마 안 남았어. 먹을 것은 아까 조금 샀고 커피 한 병 있고.

그: 커피 있다고? 콜! 우린 쌀과 양념있어. 우리 일 구할 때까지 일단 살림 합치자. 


그는 커피홀릭이었으나 돈이 없어서 기호품 구입은 보류당했다. 나는 커피 한 병을 들고 다니며 흐리게 타서 물 대신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딜이 성사되어 살림을 합치기로 했는데... 우리 셋이 가진 돈을 다 꺼내니 45불이었다.


한참 멍하던 우리. 모두가 웃고 말았다. 한참동안을 웃었다.


그: 돈도 없으면서 커피는 마시냐? 하하하.....  

나: 기름값도 없이 불안해서 어떻게 다녔냐? 하하하...


'함께'가 된 우리는 돈이 없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고, 앞날이 걱정되지도 않았고 마냥 즐거웠다.

그 전 주에 불어닥쳤던 허리케인의 여파로 수확이 지연되어 한 주 동안은 일이 없던 덕분(?)에 캬라반 파크 내 수영장에서 하루종일 놀고, 마을과 주변의 자연을 즐기면서 여행도 할 수 있었다.


일 주 후, 카나나라에서 가장 큰 농장에 운좋게 일자리를 잡은 우리는 6주 정도 재미있게 일을 했고, 다음 여행을 위한 경비를 충분히 만들어서 떠날 수 있었다. 



+ 이후에도 몇 번 더 경제적 위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나든, 좋은 사람을 만나든, 좋은 기회를 만나든 위기 탈출의 방법이 언제나 하나 이상은 있었다. 절대 산 입에 거미줄이 쳐지지 않았다. 여행 초기에는 불안한 마음과 걱정이 컸는데, 산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이후로는 그런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히려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또한 신세지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고의 제약이 많았었는데, 여행을 통해 때로는 신세져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할 수 있을 때에는 도움을 주고, 필요할 때는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 여행을 통해 배운 소중한 자산이다.

Posted by TravelGirl
2016. 1. 17. 20:40

명절이나 여름휴가 같은 긴 연휴는 물론, 금요일이나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주말을 포함한 짧은 연휴가 지나면 으레 사람들이 묻는다.


"이번에는 어디에 갔다왔어요?"

"며칠동안 ***에 다녀왔어요." 또는 "연휴가 짧아서 가까운 **에 갔었어요."

"역시..부럽네요. 항상 그렇게 놀러다니고..."

"부럽긴요. 가시면 되죠."

"에이... 난 못 가요. 그렇게 다니는게 쉬운 줄 아나..."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면 저도 못 가겠죠...)


언제부터인가 나는 휴일이면 당연히(!) 놀러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에게는 내가 남들이 못 하는 것을 하는 능력자로 보이는 듯했다.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워킹홀리데이 메이커(Working Holiday Maker)로서 호주를 1년 동안 배낭여행을 한 것으로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나서는 점점 여행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좀더 일찍 이런 세상이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이제... 나에게 여행은 생활이다.


여행. 아주 평범한 나에게도 이리 쉬운 여행이 사람들에게는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돈이 없다

여행이 어려운 이유 중 항상 1,2위를 다투는 이유 중 하나가 '돈이 없어서'이다. 여행이라고 하면 으레 멋진 풍경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저녁에는 근사한 호텔에서 묵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상상을 한다. 더구나 해외에 가려면 기본적으로 비행기 값을 들이고 시작하기 때문에 여행 = 비싼 것이다.


여행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비싼 곳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편안한게 지내는 여행이 있는가 하면, 늘 하던 것과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어쩌면 조금 더 불편하게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여행도 있다. 추구하는 바에 맞게 상황에 맞게 여행을 만들어 떠나면 된다. 그리고 해보지 않아서 잘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 비싸지 않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물론 돈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모든 취미활동이 그렇듯 기본적인 투자는 필요하다. 하지만 여행을 위한 기본적인 투자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은 아니다. 직장인들 술자리 몇 번 줄이고, 매일 한 잔 씩 마시는 비싼 커피 체인점의 커피 몇 잔 아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여행을 아예 나와는 다른 딴 세상 이야기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불가능해 보일 뿐이다.


재별2세가 아닌 이상,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여윳돈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우리네 일반인들이 떠나기 위해서는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다. 확실한 것은 그 작은 노력과 투자가 가져다 주는 선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시간이 없다

돈이 없는 것과 1,2위를 놓고 쟁쟁하게 경쟁하는 이유의 또 하나는 '시간이 없어서'이다. 보통 학생 때에는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경우가 많고, 직장인들은 그래도 고정 수입은 있는데 이제는 시간이 없다. 주중에는 회사에 묶여 있느라 시간이 없고, 주말과 휴일에는 한 주 내내 일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지친 몸을 쉬어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여행은 저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직장인은 누구나 피곤하다. 서 있을 때에는 앉고 싶고, 앉고 나면 눕고 싶고, 눕고 나면 자고 싶다는 말처럼 한 번 늘어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특히 직장인이 조심해야 할 것은 휴식을 핑계로 주말에 잠자고 누워만 있다 보면 일주일에 이틀은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 여행을 꿈꾼다면 주말이나 휴일에 일단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컨디션이 좋고 체력이 좋은 상태라면 보다 멀리, 보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행을 만들면 되고, 피곤하고 지쳤다면 바닷가로 가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쉬고만 와도 좋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서 다른 여행을 만들면 된다. 주중에는 모두가 비슷한 일상을 살지만 주말과 휴일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철저하게 자신의 선택이다.


여행을 위한 시간이 별도로 주어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쪼개어 꾸역꾸역 시간을 만들어 떠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피곤한 몸을 눕히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낯선 곳이 주는 새로움과 설렘, 휴식은 그 피로를 충분히 보상하고, 그 이상의 에너지를 채워준다.   


여유가 없다

돈도 시간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단다. 이것 역시 흔한 핑계(!) 중 하나이다. 돈도 돈이고, 시간도 시간이지만 너무나 바빠서, 상황이 좋지 않아서 떠날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여행에 필요한 마음의 여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여행은 여유있을 때에만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유를 만들러, 여유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매일 느긋한 가운데 떠나는 것보다 빡빡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머릿 속에 복잡한 일만 한 가득일 때, 전생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온갖 일이 나에게만 발생한다고 느낄 때 훌쩍 떠나는 여행이 오히려 더 짜릿하다. 잠깐의 일탈 후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에너지가 가득하고, 능률이 한층 상승해 있음을 깨닫는다.


외국어를 못한다

해외여행에 대해서는 얘기한다. '나는 말이 안 통해서...'

사실 경헙해 보면 외국어는 딱히 필수요건이 아니다. 물론 말이 통하면 크게 도움이 되고, 여행이 완전 편해진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행이 불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국어와 딱 학교다닐 때 공부했던 만큼 만의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여행에 충분하다. 외국어는 그 자체가 필요충분조건도 아니고, 필수 조건도 아니고, 그저 의사소통을 위한 무수한 수단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언어로 통하지 않으면 보디 랭귀지라고 하는 손짓발짓으로 하면 된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우리에게 무언가 물어볼 때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알아듣는다. 성인이 되어 배우는 외국어는 절대 원어민 수준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외국어를 준비해서 해외여행을 가려 한다면 절대 못 간다. 아무리 공부해도 준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 하나 필요한 것은,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 그 이상이다.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미안해 할 이유도 없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sorry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 도전하기 전까지는 여행이란 나와 다른 세상의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돈 없이, 시간 없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기본은 되는 사람들이니까 저런 얘기라도 하는 거다. 먹고사는 것에 바쁜 팍팍한 내 인생에는 사치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정말 하면 된다. 스스로의 상황에 맞춘 나만의 여행을 만들면 된다. 여행은 표준이 없다. 


정말 여행을 하고 싶다면 떠나는 사람을 보고 '부럽다'만 연발하지 말고, 떠나지 않을 온갖 핑계를 찾아서 스스로를 묶어 두지 말고, 과감하게 한 발 내딛어 보자. 분명히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고, 내 세상이 조금씩 넓어질 것이다.


Posted by TravelGirl
2015. 9. 26. 00:26

2015년 10월. 태국 북부를 여행하는 중.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동남아시아는 오토바이라는 교통수단이 아주 대중적이다.

오토바이를 타 본 적 없는 나에게는 어디를 가든지 도시를 벗어나면 약간의 아쉬움이 따라다녔다. 주변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은데 차를 렌트 하자니 비싸기도 하고, 길도 잘 모르는 시골에서의 운전이 썩 내키지 않고, 택시를 계속 타고 다니자니 배낭여행의 예산으로는 만만치 않았다.


치앙마이를 거쳐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만난 작은 마을 빠이(Pai).

예전에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고 하나 영화에 등장하고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더 이상 조용하지만은 않다.


마을은 아주 작아서 슬슬 걸어다니거나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로 충분하다. 하지만 마을 외곽 주변에 퍼져 있는 곳들을 돌아보려면 교통이 필요하다. 택시는 하루종일 대절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나가기는 쉬우나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고, 언덕지고 굴곡이 심한 길은 자전거로는 무리다. 당연히 오토바이로 눈이 간다.


버스 터미널 옆에는 오토바이 대여점이 크게 성업 중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대여를 한다.


빠이 도착 첫 날. 

마을을 모두 둘러보았다. 마을은 하루면 충분히 돌아본다. 주변을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오토바이를 도전하고 싶으나 아무래도 겁이 난다. 여기저기 깁스하고 긁히고 까진 상처에 붕대감고 밴드 붙이고 다니는 여행자들이 꽤 많이 보이는데 99% 오토바이 사고이다.


두번째 날.

다행히도(?) 비가 온다. 오토바이를 빌릴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서 비가 오히려 반갑다. 어쨌든 비오면 못 타니까.

점심을 먹은 현지 식당 바로 옆에 여행사가 있어서 여행사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밥 먹으면서 옆에 서 있는 유럽 아이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 너 오토바이 탈 줄 알아?

그: 응. 어제 빌려서 근처 돌아보고 오늘 치앙마이로 넘어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거야. 왜?

나: 오토바이 타고 싶은데... 타 본 적이 없어서 고민중이야

그: 타 봐. 아주 쉬워. 그걸 왜 고민을 해?

나: 위험하잖아

그: 자전거 탈 줄 알아?

나: 응

그: 자동차 운전할 줄 알아?

나: 응

그: 그럼 뭘 고민해? 자전거보다 훨씬 쉬어. 자동차 오락하는 것과 비슷해

나: 처음 타보는데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그: 너 기계같은 거 다루는 거 익숙해? 여자들이 조작에 익숙하지 않긴 한데...

나: 응. 기계는 잘 다뤄. 내 직업은 엔지니어야

그: 그럼 뭘 고민해? 그냥 가서 빌려. 넌 바로 탈 수 있을거야. 난 확신해. 단, 너희 나라 도로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 것을 더 많이 신경써야 할거야 (태국은 차가 좌측통행이다)

나: 그래 한 번 해 보자.


하룻동안의 고민과 그 아이의 확신과 응원에 힘입어 내일 오토바이를 빌리기로 한다. 비오는 오늘은 어차피 못 빌리니까. 

숙소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찾는다. 오토바이 운전법을 열심히 글로 배운다. 불안한 마음에 낮에 보고 찍어놓고 온 오토바이 모델명을 찾아 조작법을 숙지한다.


다음 날. (세번째 날)

긴장된 마음으로 오토바이 대여점으로 간다. 대여점 직원 언니는 참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일한다.


나: 오토바이 작은 것 하나 빌리께. 오토로.

그: 탈 줄 알아? 타 본 적은 있어?

나: 응. (처음이라고 하면 안전상의 이유로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그러면 조작법은 안 알려줘도 되겠네.

나: 아... 나 타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 그런데 조작법 한 번 쭉 설명해 줄래? 혹시나 해서...얘기한 번 들으면 기억이 다 날꺼야

그: 오케이. (조작법을 쭉 설명한다. 어제 글로 배운 것이 다시 한 번 기억난다)

나: (올라앉으며) 고마워. 나 간다...


긴장 잔뜩에 글로만 배운 것을 처음 실습하려니 부릉부릉, 덜컹덜컹.... 감이 잡힐 듯 하는데 대여점 언니가 달려서 쫓아온다.


그: 잠깐만. 너 진짜 탈 줄 알아? 확실해?

나: 그럼~ 너무 오래되었다고 했잖아. 이제 다 기억났어. 괜찮을 거야.


실제로 오토바이는 생각보다 쉬웠다.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월등히 둔하고, 균형감각도 둔해서 자전거도 썩 잘 타는 편이 아닌데 오토바이는 훨씬 쉽다. 타는 것은 금방 익숙해졌는데, 어제 만난 유럽 아이의 말처럼 도로의 반대 쪽을 달려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습관이 무서운 것이 신경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달리고 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오토바이를 타고 빠이 캐년(Pai Canyon), 커피 인 러브(Coffee in Love), 타빠이 철교(Memorial Bridge) 등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밤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언제 또 탈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할 줄 아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후... 

빠이에서 매홍쏜(Mae Hong Son)으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만난 스페인 여자아이. 이마는 찢어져서 꿰맸고, 무릎은 다 까져서 붕대를 붙였고 왼쪽 다리는 구부리지도 못한다. 


나: 오토바이 사고야?

그: 응. 처음 타는 거였거든.

나: 나도 어제 처음 타봤는데 생각보다 쉬웠어. 다행히 사고도 없었고.

그: 나도 잘 타고 마을로 돌아오다가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할 지를 보느라 바닥이 패인 것을 몰랐어. 오토바이 때문이 아니라 길을 몰라서 넘어진 거야.

나: 처음 타면서 이래서 넌 이제 다시 타기 겁나겠다.

그: 아니. 다음에는 더 잘 탈 수 있을 것 같아. 넘어져 봤으니까 온전히 길에 집중하면서.  

나: 아...



+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뒤늦게나마 배운 오토바이로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한 가지 늘었다. 이것만으로도 나의 빠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새로운 일, 특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더 많이 몸을 사리게 된다. (물론 오토바이 사고는 그 결과가 과하게 처참하니 조심, 또 조심은 당연하다) 한 번 넘어졌다고 멈추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겁없는 젊음이 참 예쁘다.

Posted by TravelGirl
2014. 10. 11. 03:08

2000년 호주를 여행하는 중, 에얼리 비치(Airlie Beach)에서 생긴 일.

 

늦은 오후에 에얼리 비치에 도착해서 이전 마을을 떠날 때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 리셉션을 통해 다음날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에얼리 비치 투어를 예약했는데, 때마침 가지고 있던 현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호스텔 주인은 예약을 해 주면서 투어 비용을 다음날 투어 가이드에게 직접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배낭여행객들은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나 역시 현지 커먼웰스 은행(Commonwealth bank)의 계좌에 돈을 넣어 놓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현금을 인출해서 썼다.)

 

다음날 투어는 새벽 일찍 시작하는 거라 돈을 찾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날이 이미 어두워졌지만 마을 구경도 할 겸, 호스텔 주인에게 ATM의 위치를 물어서 슬슬 걸어 나왔다.

 

저 멀리 커먼웰스 은행 지점과 ATM이 보여서 저기구나...하고 가는데, 가까이 갈수록 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e)의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마트의 카트를 가지고 은행의 유리벽을 힘껏 내려쳐서 부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은행은 경보도 울리지 않고 조용했다. 강화 유리라서 제법 튼튼해서 한번에 깨지지 않으니 계속 카트를 들어 내리치고 있었다.

 

모든 가이드북에서, 여행자와 호주 사람들의 얘기에서, 심지어 호주 방송에서도 애보리진은 사회에 문제만 일으키는 위험한 부족이었다. 어지간하면 피해가라고 권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이것은 위험한 상황이다. 심지어 은행 앞이고 저쪽은 폭력과 더불어 범법행위를 하는 중이다. 머리 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지? 저 아이가 나를 봤을까? 지금 확 뒤돌아 가면 저 아이가 어떻게 나오려나?'

 

'그냥 길을 가는 중이었던 양 자연스레 지나가까? 내가 은행 가는 길이었다는 것이 티나려나?'

(은행은 길 끝에 있어서 은행을 지나가면 반대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나 티나는 설정이 될 것 같았다)

 

'그냥 못 본 척 무시하고 조용히 돈 찾아서 가까? 근데 여기서 돈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겠지?'

 

고민하면서도 내가 겁내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한 걸음씩 가까이 가고 있었다. 머리 속은 복잡한 채로.

 

그 때.

그 아이가 나를 부른다. 헉. 나를 본게 분명하다.

 

그: 헤이~

나: 왜?

그: 넌 어디에서 왔니?

나: 한국

그: 오~ 한국! 반가워!! 우리 악수하자.

(손내밀어 악수했다)

그: 난 아시아 사람들이 너무 좋고, 특히 한국인들이 정말 좋아.

나: 왜?

그: 똑똑하잖아. 백인들은 유색인종을 너무나 무시해. 그런데 아시아인들, 특히 너희 한국인들은 유색인종인데도 똑똑하잖아. 그래서 백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잖아. 난 그게 너무 좋아.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스스로 백인들을 혼내주는 방법을 찾았어. 그게 이거야. 잘 봐.

(다시 카트를 들어서 은행 유리를 친다)

나: (너무 놀라서 거의 비명) 그만! 하지마!!

그: 왜? 난 백인을 혼내주고 있는거야.

나: 그만해. 이건 아닌거 같아.

그: 괜찮아

 

그 때 경찰이 왔다. 은행 자체에서 경보는 울리지 않았지만, 경찰서로는 경보 상황이 전달된 것 같았다.

그는 순순히 경찰차에 올라탔다.

 

그: (경찰차에 올라타며) 잊지마. 너희는 최고야!

나: (뭐라 할지 몰라) ... 고마워

경찰: 너 다치지 않았니?

나: 아니

경찰: 저 아이가 너를 위협하거나 폭력을 쓰지 않았니?

나: 아니.

경찰: 확실하니? 이제 괜찮으니 겁먹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

나: 전혀. 저 아이는 나에게 아주 친절했어. 정말 괜찮아.

 

경찰이 아이를 태우고 사라졌다.

멍하니 있다가 이제야 한숨 돌리고 정신 차리고 무사히 ATM에서 돈을 찾아 숙소로 돌아왔다.

 

그 아이는... 그저 자신들을 무시하는 백인의 시선이 싫어서 나름대로 소심한 1인 시위를 했다. 그리고는 곱게(?) 잡혀갔다.

심지어 백인들을 상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들을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백인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태생으로 인한 한계에 대한 한(恨)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그 아이는 범죄자였을까? 물론 은행을 부수는 행위 만으로는 충분히 범죄자였다. 하지만, 어린 그 아이가 왜 그런 행동까지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경찰도, 백인들도 한 번 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정상참작까지도.

 

나에게서 애보리진에 대한 편협한 시선을 날려보내 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 세상에 처음부터 위험한 사람은 없다. 편견을 버리고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면 모두가 '사람' 그 자체일 뿐이다.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티가 난다면 나도 절대 기분 좋을 리 없다.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그냥 사람은 사람이다.

물론... 뒤돌아 생각하면 참으로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는데 나의 타고난 인복이 제대로 한 몫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Posted by TravelGi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