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2월 29일. 여행 둘째날
트램을 타고 유노카와 온천(湯の川溫泉)에 내리면 가장 먼저 노천 족욕탕이 보인다. 여기는 공용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당연히 무료.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다. 낮에 도착해서 봤을 때는 관광객 두 명이 발 담그려 준비하고 있었다.
관광안내센터에서 받은 온천 목록에서 ① 트램 정류장에서 멀지 않고, ② 금액이 합리적이고, ③ 노천탕이 있고, ④ 숙박 안 하고 당일 온천만 할 수 있는 곳을 기준으로 해서 타쿠보쿠테이(湯元 啄木亭)를 내정해 놓았다.
온천 목록. 1-7까지만 숙박없이 당일 온천 가능하단다.
족욕탕은 그냥 지나치고, 타쿠보쿠테이를 찾아간다. 받은 온천 목록 아래 각 온천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있는데 뭔가 실제 지형하고 살짝 다른 느낌이다. 어리버리의 시작. 대략 지도에 표시된 방향대로 내려가는데... 온천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닌데? 찾는 곳은 안 보이고 우체국이 보인다. 아! 나 국제우편 엽서용 우표 사야한다. 우체국에 먼저 들어가서 우표를 사려는데 당연히(!) 말이 안 통한다. 하긴 시골 우체국에 외쿡인이 무슨 우표를 사러 오겠냐마는... 어쨌든 이래저래 해서 우표 두 장을 사서 나왔다. 성공!
해외여행 중 가족이나 친구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엽서를 한 장 써서 보내면 기록도 되고, 기념도 되고, 좋은 선물이 된다. 관광지에서 엽서를 사고, 우표를 사서 우체국에서 발송하거나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표준 크기 엽서의 국제 발송 요금은 수신 국가에 상관없이 같은 금액이다.
우표를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나오긴 했는데... 타쿠보쿠테이를 어떻게 찾아가지? 우체국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께 길을 물으니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데 모르겠다. 한 건물을 가리키시며, 뭐라뭐라 하시는데 '저 건물까지...' 밖에 못 알아듣겠다. (결론적으로는 저 건물 뒤 or 저 건물인데 입구가 반대쪽에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못 알아 들었더니 같이 가자 하신다. 반가운 마음에 그 쪽 가시는 길이냐고 여쭤보고 싶으나... 내가 아는 단어 범위에서 그 문장 조합이 안 된다. 게다가 Yes/No 이외의 대답을 하시면 못 알아들을 것이 뻔해서 말을 못 건다. 센스있는(?) 이 어르신이 말 한 마디 안하고 묵묵히 직진하셔서 나도 묵묵히 따라갔다. 타쿠보쿠테이 호텔 입구에 이르러서야 여기라고 하시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신다!!! 이런... 감사해라... 그 분도 이쪽 방향으로 오시는 길인줄 알았는데 일부러 오신 거였구나. 90도로 허리숙여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외쳤더니 손짓 한 번 하시고 휙 가신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시골여행의 묘미 중 하나. 순박하고 좋은 분들의 뜻밖의 도움. 큰 도시가 아니고, 특히 시골로 갈 수록 어딜가나 인정이 넘치고 사람들이 참 좋다.
타쿠보쿠테이 호텔의 온천은 11층에 있다. 프런트에서 온천하러 왔다고 하면 결제해 준다. 수건 대여료는 별도이다. 아침에 수건 하나 챙겨 나왔다. 옆에 있는 슬리퍼로 갈아신고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가라 한다. 올라가면 그 다음은 알아서... 안내고 뭐고 없다. 눈치껏 하면 된다.
온천은 꽤나 좋다. 사람도 별로 없고, 실내 온천도 한 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특히 바깥에 있는 조그만 노천탕은 완전 좋다. 영하의 날씨에서 호텔 옥상에서 시내 야경을 내려다 보면서 노천 온천이라... 시내가 보이는 건물 옥상에 옷을 안 입고 서 있다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묘했으나, 그것도 잠시. 너무 추워서 온천에 퐁당. 실내와 노천을 왔다갔다 하고, 따뜻한 물 속에 앉아 해지는 것도 보고, 한참을 실내/노천을, 물 밖/물 속을 들락날락 하면서 제대로 쉬고 때깔좋게 해서 나왔다. 대만족!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11층 온천입구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하나 남겼다. 이런 풍경이 온천 안에서도 보인다.
드.디.어. 야경보러 간다~!!!
타쿠보쿠테이를 나와서 다시 트램을 타고 전날 갔던대로 주지가이(十字街)로 가서 또 같은 길을 꾸역꾸역 올라간다. 오늘 아침 트램 1일권을 끊어서 로프웨이를 10% 할인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어제보다 나아진 점이다. 드디어 티켓을 손에 들고 로프웨이를 타러 올라가려는데... 중국 단체 관광객 3~4팀 사이에 끼었다ㅠㅠ.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 올라가기 싫다. 화장실 앞에 음료 자판기와 테이블이 있는 휴게실이 있길래 한참을 앉아 놀며 관광객들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WiFi 지역이라 심심치 않을 수 있었다. 어느 나라 관광객이든 그들 단체의 중간에 끼는 것은 정말 싫다. 사람많고 시끄럽고...
관광객들을 모두 다 보내고 뒤늦게 로프웨이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산 위에 올라가면 세계 3대 야경이라는 하코다테 항구의 야경이 보인다. 멋지다. 특히 이 전망대가 정말 마음에 드는 건, 거의 모든 전망대는 유리창 밖으로 봐야 해서 늘 아쉬운데, 여긴 야외에서 완전 탁트인 야경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야경에 자부심이 있는 것이겠지.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하코다테 야경은 홍콩, 나폴리와 함께 세계 3대 야경이란다. 야외이니 만큼 춥긴 하다.
로프웨이를 탈 때 뒷쪽(산 아래쪽)으로 자리를 잡으면 올라가면서 점점 야경이 눈앞에 열리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야경의 난간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분주해서 사람없는 야경을 감상하거나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단체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내려오면 기념품 샾이 있다. 관광지 기념품 샾 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 잠깐 들렀는데... 아까 먼저 올라간 단체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기념품을 바구니에 담고 있다. 저걸 어떻게 다 들고 돌아가시려고... (별 걱정...)
야경은 충분히 봤고, 기념품 샾은 대충 구경만 하고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온다. 내려와 보니 호텔로 돌아가긴 살짝 아까운 시간이고, 그렇다고 어딜 또 들르기는 조금 늦은 시간이다. 공화당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야경도 멋있다 하여 딱 거기까지만 보고 돌아가자..하고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멀다. 야경은 같겠지 라고 급 합리화 하고 붉은 벽돌 창고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금 가다보니 Bay 주변 바다가 나온다. 여기도 정말 예쁘다.
걷다보니 예쁜 풍경이 계속 나오는데 겨울 밤바다라서 그런지 너~~~~~무 춥다. 어디까지 가보까 하고 있는데 폰이 추위에 기절하신다. 많이 걸었고, 다리도 아프고, 춥고, 배고프고 한데 마침(!) 폰도 기절해서 어딘가 들어가서 뭔가 먹으면서 쉬어야겠다 하는데 앞에 보이는 건 스타벅스 등등 카페들. 밥 먹어야는데... 그 와중에 럭키삐에로가 정면에 짜잔~!!! 이게 왜 이리 반갑지?ㅋ
하코다테에서의 마지막 날이어서 다이몬요코쵸나 선술집에 가서 조촐히 나마비루 한 잔에 간단한 안주로 저녁 먹으려 했는데 춥고 배고파서 앉은 김에...게다가 어제 아주 맛나게 먹어서 커리도 먹어보고파서 1번 커리를 시켰다. 이것도 꽤 괜찮다. 패스트푸드 같은 느낌이 아니네.
몸도 녹이고, 폰도 살아났고, 맛있게 먹어 배도 부르고, 이젠 슬슬 호텔로 돌아가야겠다. 트램 끊기기 전에.
가는 길 골목골목도 예쁘다. 여기는 언덕 길이 참 많다. 눈이 많은 동네인데 이런 언덕에서 어떻게 매년 겨울을 날까...
밥먹으면서 지도에서 찾은 일본 최고 높이의 콘크리트 전봇대가 가는 길에 있길래 슬쩍 한 번 봐 주고... 전봇대 치고는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데, 전봇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이유로 뭔가 특이한 가보다 하고 촬영만. 투박하다.
트램 정류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도 모두 조명 장식을 해 놓아서 예쁘다.
거리의 눈을 한쪽으로 치워놓으면서 길가의 바닥 가로등이 눈 속에 완전히 파 묻혔다. 왠지 따뜻해 보여...
트램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서 하코다테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마지막 밤을 함께 할 오늘의 맥주. 개인적 취향으로 왼쪽 음료는 별로...
하코다테에서 이틀을 알차게 잘 놀았다. 소박하고 따뜻한 동네. 떠나려니 왠지 아쉽기도 하다.
내일은 다른 도시로 이동. 또 무슨 일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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