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2월 30일. 여행 셋째날
하코다테를 떠나는 날. 아침 8:13am 슈퍼 호쿠토(特急ス-パ-北斗) 3호 열차로 좌석을 지정 예약해 놓았다. 10시대 열차를 타려 했으나 이미 지정석이 만석이라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당겼기에 일찍 움직여야 했다.
아침부터 펄펄 눈이 내린다.
아침은 에키벤(驛弁)을 사서 기차에서 먹기로 한다. 친구에게 받은 가이드 북에 하코다테 역에서 파는 우니이쿠라(うにいくら) 에키벤이 맛있다고 해서 그거 먹어봐야지 했는데... 어라? 없다. 역시 가이드 북은 반만 믿어야 해. 대신 게살볶음밥 선택. 얼른 사서 후다닥 플랫폼으로 올라간다.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이젠 진짜 안녕... Bye 하코다테...
슈퍼 호쿠토(特急ス-パ-北斗) 3호
지정석은 자유석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설국열차 뒷쪽 평민 칸에서 앞쪽으로 온 기분이랄까. 좌석도 넓고,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저기 보이는 티켓 꽂이(?). 저기에 티켓을 꽂아 놓으면 승무원 아저씨가 지나 다니다가 알아서 검표를 하신다. 맘놓고 잘 수도 있다.
이제 아침 식사. 지정석에 앉아서 벤또를 먹으면서 현지인 놀이.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열차 음식이라고, 도시락이라고 소홀히 만든 것이 아니다. 양도 꽤 많다. 탁월한 선택이었음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창밖 풍경 보면서 밥 먹으며 소풍가는 기분을 즐긴다.
창 밖에 지나가는 풍경도 예쁘다...
약 2시간 반을 달려서 노보리베쓰에 도착.
계획: 이 곳에서 약 4시간 동안 머무른다. 배낭은 역의 코인로커에 맡기고 가볍게 간다. 지옥계곡(地獄谷, じごくだに, 지고쿠다니)만 둘러보고 돌아온다. 2:48pm 삿포로행 열차를 탄다... 라는 아름다운 계획.
실제: ..... 음... 당연히(!) 많이 달랐다.
노보리베쓰 역에서 온천 지역까지는 시내버스로 15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큰 짐은 역 내 코인로커에 맡겨 놓고 가려했는데... 코인로커가 24개 뿐이다. 이미 모두 잠겨있다. 잠시 들러가려는 관광객들은 열차에서 계속 내리고 있고, 관광객 수 대비 택도 없이 부족한 로커이다. 큰 캐리어 가방들은 로커 캐비넷 위에 얹어 놓거나 옆쪽 구석에 그냥 놓고 가기도 하는데 내 것은 그다지 크지 않은 배낭이라 홀딱 집어가기 딱 좋은 사이즈인지라 그냥 놓고는 못가겠다. 귀중품이 없어서 잃어버릴 생각하고 놓고 갈까 싶다가도, 그러다 혹시 잃어버리고 나면 남은 이틀의 여행을 즐길 자신이 없다.
버스 시간도 좀 남아 있고, 밖은 춥고, 앉아 있을 곳도 없고 해서 로커 앞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와서 가방을 빼려 한다. 바로 옆의 중국인 관광객이 잽싸게 맡으며 자기 일행들을 부른다. 그 사람 일행들이 짐을 넣느라 로커를 둘러 싼 사이, 바로 옆 칸에 다른 사람이 또 짐을 빼려한다. 잽싸게 가서 빼는거냐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아싸~!!' 나보다 한 발 늦게 발견한 큰 캐리어를 가진 중국인 관광객의 부러운+아쉬운+안타까운 시선을 뒤로 하고 의연하게 가방을 던져 넣고 열쇠를 챙긴다. 사는 게 다 스포츠야~
노보리베쓰에서 유명(?)한 곰의 인사를 받으며 역사 밖으로 나가면 버스정류장이다.
때마침 버스가 오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온천으로 Go~.
노보리베쓰역 → 노보리베쓰 온천 시내버스 승차권
15분 정도 달린 후 노보리베쓰 온천 터미널에 도착한다.
노보리베쓰 역에서 로커가 빈 곳이 없어서 짐을 못 맡겼다면 일단 버스를 타고 온천까지 와도 되겠다. 노보리베쓰 온천 터미널에서도 짐을 보관해 주는 듯하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일본인 커플이 짐을 가지고 와서 여기에 맡기는 것을 보았는데 유료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에서 지옥계곡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터미널 내 Information에서 지도를 얻어서 사람들이 가는 길로 따라간다.
조금 더 올라가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커다란 도깨비 두 마리(두 명? 두 분?)가 있고, 드디어 지옥계곡의 입구이다.
지옥계곡(地獄谷, じごくだに, 지고쿠다니)은 히요리산의 분화활동에 의해 생겨난 분화구이다. 계곡을 따라 무수한 분출구와 분기공이 있어서 중간중간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는 풍경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둘러보면 지옥계곡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는 것을 그냥 알게 된다. 말이 필요없다. 날씨가 너무나 맑아서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지는 정말 멋진 지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유황온천이라더니 계곡입구에 가까이 들어서면 유황냄새가 진동을 한다.
중간 중간 저렇게 김이 폴폴 솟아나오는 곳이 모두 분출구와 분기공이다. 연못만한 큰 것도 있지만 아주 작은 구멍에서도 김이 뿜어 나오는 광경이 신기하다.
지옥계곡(지고쿠다니)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 보면 끝에 뎃센 이케(鉄泉池)가 있다. 조그만 간헐천인데 물이 끓어오르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내가 갔을 때 운좋게도 마침 잠깐 물이 끓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몰라서 그냥 지나칠 뻔 했는데, 혼자 온 일본인 남자아이 하나가 터미널에서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서 가이드와 함께 왔는데 코스와 이동 속도가 나와 비슷해서 거의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 가이드가 갑자기 지금 보라며 호들갑을 떨어서 얼떨결에 보게 되었는데 뽀글뽀글 물이 끓어올라왔다. 일부러 기다려서 보는 광경이란다.
지고쿠다니 산책로가 끝나는 시점에서는 다시 내려올 수도 있고, 오유누마(大湯沼) 쪽 산책로로 갈 수도 있다. 패키지 관광객들이 시간에 쫓겨서 지고쿠다니만 보고 우루루 내려간다. 괜히 우쭐하고 뿌듯한 마음에 자유여행객인 나는 오유누마까지 둘러보러 간다.
히요리야마(日和山) 전망대. 저 뒤에 보이는 산이 히요리야마인데, 아직도 활동하는 활화산이라고 한다. 산꼭대기에서 화산 연기가 여전히 뿜어나온다. 화산이라고 생각하면 언제 터질까 생각에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살짝 무섭기도 하고, 그냥 산이라 생각하면 누군가 꼭대기에서 봉화를 피우는 것 같다.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 보면 오유누마(大湯沼)가 보인다. 오유누마는 히요리야마의 분화 때에 생겨난 분화구로, 주위 약 1km의 표주박 모양 유황천이다. 눈쌓인 산 아래 커다랗고 따뜻한 연못의 이색조합이다.
오유누마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니, 지옥계곡과 오유누마의 산책이 너무 빨리 끝났다. 처음 예상에 비해 지옥계곡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둘러보는 데에 시간이 그다지 많이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깊이 둘러볼까, 내려가야 할까를 잠깐 생각하다가 오쿠노유(奧の湯)까지 내려가 보기로 가뿐히 결정. 오쿠노유까지 내려가는 길은 눈쌓은 산속 오솔길이어서 다소 미끄럽고 위험하다. 게다가 거기까지 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지나치게 조용하기도 하고 더욱 조심하게 된다.
내려가보니 발은 한 번 담가보고 싶은 커다란 온천탕이다. 표면 온도가 75-85도까지란다. 발 담그면 큰일나겠다.
아니, 이 날씨에 어떻게 저렇게 물이 펄펄 끓을 수 있지? 자연의 신비란.... 오묘하다.
고드름이 참 예쁘게도 맺혔다. 바로 앞 온천에서의 따뜻한 물이 추운 날씨와 만나서 함께 만드는 작품이겠다.
오쿠노유 주변을 둘러보고 이제 다시 마을로 돌아오려고 오유누마를 따라서 돌아가는 산책로로 방향을 잡는다. 처음 계획은 오유누마 전망대 쪽으로 다시 올라가서 중간쪽 산책로인 후나미야마(舟見山) 산책로로 내려가는 거였는데, 아까 올라오면서 지나다 보니 그 산책로가 폐쇄되어있다. 눈길이라서 그런가 보다. 관광지도에 그 쪽 산책로에도 이것저것 볼 것이 많은 것 같은데 아쉽다. 어쩔 수 없이 오유누마를 끼고 도는 큰 도로를 따라 돌아오기로 한다.
가까이서 보는 오유누마는 예술이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장관에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백두산 천지에 갔을 때 날이 흐려서 전체가 보이지 않았는데, 맑은 날의 백두산 천지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오유누마를 크게 한 번 더 돌아보고 시간을 보니 이제는 정말 내려가야 할 시간. 이 멋진 풍경을 뒤로 하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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