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2. 22:44

※ 2015년 12월 29일. 여행 둘째날


트램을 타고 유노카와 온천(湯の川溫泉)에 내리면 가장 먼저 노천 족욕탕이 보인다. 여기는 공용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당연히 무료.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다. 낮에 도착해서 봤을 때는 관광객 두 명이 발 담그려 준비하고 있었다. 



관광안내센터에서 받은 온천 목록에서 ① 트램 정류장에서 멀지 않고, ② 금액이 합리적이고, ③ 노천탕이 있고, ④ 숙박 안 하고 당일 온천만 할 수 있는 곳을 기준으로 해서 타쿠보쿠테이(湯元 啄木亭)내정해 놓았다.


온천 목록. 1-7까지만 숙박없이 당일 온천 가능하단다.


족욕탕은 그냥 지나치고, 타쿠보쿠테이를 찾아간다. 받은 온천 목록 아래 각 온천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있는데 뭔가 실제 지형하고 살짝 다른 느낌이다. 어리버리의 시작. 대략 지도에 표시된 방향대로 내려가는데... 온천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닌데? 찾는 곳은 안 보이고 우체국이 보인다. 아! 나 국제우편 엽서용 우표 사야한다. 우체국에 먼저 들어가서 우표를 사려는데 당연히(!) 말이 안 통한다. 하긴 시골 우체국에 외쿡인이 무슨 우표를 사러 오겠냐마는... 어쨌든 이래저래 해서 우표 두 장을 사서 나왔다. 성공!


 

해외여행 중 가족이나 친구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엽서를 한 장 써서 보내면 기록도 되고, 기념도 되고, 좋은 선물이 된다. 관광지에서 엽서를 사고, 우표를 사서 우체국에서 발송하거나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표준 크기 엽서의 국제 발송 요금은 수신 국가에 상관없이 같은 금액이다.


우표를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나오긴 했는데... 타쿠보쿠테이를 어떻게 찾아가지? 우체국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께 길을 물으니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데 모르겠다. 한 건물을 가리키시며, 뭐라뭐라 하시는데 '저 건물까지...' 밖에 못 알아듣겠다. (결론적으로는 저 건물 뒤 or 저 건물인데 입구가 반대쪽에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못 알아 들었더니 같이 가자 하신다. 반가운 마음에 그 쪽 가시는 길이냐고 여쭤보고 싶으나... 내가 아는 단어 범위에서 그 문장 조합이 안 된다. 게다가 Yes/No 이외의 대답을 하시면 못 알아들을 것이 뻔해서 말을 못 건다. 센스있는(?) 이 어르신이 말 한 마디 안하고 묵묵히 직진하셔서 나도 묵묵히 따라갔다. 타쿠보쿠테이 호텔 입구에 이르러서야 여기라고 하시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신다!!! 이런... 감사해라... 그 분도 이쪽 방향으로 오시는 길인줄 알았는데 일부러 오신 거였구나. 90도로 허리숙여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외쳤더니 손짓 한 번 하시고 휙 가신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시골여행의 묘미 중 하나. 순박하고 좋은 분들의 뜻밖의 도움. 큰 도시가 아니고, 특히 시골로 갈 수록 어딜가나 인정이 넘치고 사람들이 참 좋다.


 

   

타쿠보쿠테이 호텔의 온천은 11층에 있다. 프런트에서 온천하러 왔다고 하면 결제해 준다. 수건 대여료는 별도이다. 아침에 수건 하나 챙겨 나왔다. 옆에 있는 슬리퍼로 갈아신고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가라 한다. 올라가면 그 다음은 알아서... 안내고 뭐고 없다. 눈치껏 하면 된다.


온천은 꽤나 좋다. 사람도 별로 없고, 실내 온천도 한 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특히 바깥에 있는 조그만 노천탕은 완전 좋다. 영하의 날씨에서 호텔 옥상에서 시내 야경을 내려다 보면서 노천 온천이라... 시내가 보이는 건물 옥상에 옷을 안 입고 서 있다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묘했으나, 그것도 잠시. 너무 추워서 온천에 퐁당. 실내와 노천을 왔다갔다 하고, 따뜻한 물 속에 앉아 해지는 것도 보고, 한참을 실내/노천을, 물 밖/물 속을 들락날락 하면서 제대로 쉬고 때깔좋게 해서 나왔다. 대만족!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11층 온천입구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하나 남겼다. 이런 풍경이 온천 안에서도 보인다.



드.디.어. 야경보러 간다~!!! 

타쿠보쿠테이를 나와서 다시 트램을 타고 전날 갔던대로 주지가이(十字街)로 가서 또 같은 길을 꾸역꾸역 올라간다. 오늘 아침 트램 1일권을 끊어서 로프웨이를 10% 할인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어제보다 나아진 점이다. 드디어 티켓을 손에 들고 로프웨이를 타러 올라가려는데... 중국 단체 관광객 3~4팀 사이에 끼었다ㅠㅠ.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 올라가기 싫다. 화장실 앞에 음료 자판기와 테이블이 있는 휴게실이 있길래 한참을 앉아 놀며 관광객들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WiFi 지역이라 심심치 않을 수 있었다. 어느 나라 관광객이든 그들 단체의 중간에 끼는 것은 정말 싫다. 사람많고 시끄럽고...


관광객들을 모두 다 보내고 뒤늦게 로프웨이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산 위에 올라가면 세계 3대 야경이라는 하코다테 항구의 야경이 보인다. 멋지다. 특히 이 전망대가 정말 마음에 드는 건, 거의 모든 전망대는 유리창 밖으로 봐야 해서 늘 아쉬운데, 여긴 야외에서 완전 탁트인 야경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야경에 자부심이 있는 것이겠지.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하코다테 야경은 홍콩, 나폴리와 함께 세계 3대 야경이란다. 야외이니 만큼 춥긴 하다. 


 로프웨이를 탈 때 뒷쪽(산 아래쪽)으로 자리를 잡으면 올라가면서 점점 야경이 눈앞에 열리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야경의 난간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분주해서 사람없는 야경을 감상하거나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단체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내려오면 기념품 샾이 있다. 관광지 기념품 샾 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 잠깐 들렀는데... 아까 먼저 올라간 단체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기념품을 바구니에 담고 있다. 저걸 어떻게 다 들고 돌아가시려고... (별 걱정...)


야경은 충분히 봤고, 기념품 샾은 대충 구경만 하고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온다. 내려와 보니 호텔로 돌아가긴 살짝 아까운 시간이고, 그렇다고 어딜 또 들르기는 조금 늦은 시간이다. 공화당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야경도 멋있다 하여 딱 거기까지만 보고 돌아가자..하고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멀다. 야경은 같겠지 라고 급 합리화 하고 붉은 벽돌 창고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금 가다보니 Bay 주변 바다가 나온다. 여기도 정말 예쁘다.






걷다보니 예쁜 풍경이 계속 나오는데 겨울 밤바다라서 그런지 너~~~~~무 춥다. 어디까지 가보까 하고 있는데 폰이 추위에 기절하신다. 많이 걸었고, 다리도 아프고, 춥고, 배고프고 한데 마침(!) 폰도 기절해서 어딘가 들어가서 뭔가 먹으면서 쉬어야겠다 하는데 앞에 보이는 건 스타벅스 등등 카페들. 밥 먹어야는데... 그 와중에 럭키삐에로가 정면에 짜잔~!!! 이게 왜 이리 반갑지?ㅋ


하코다테에서의 마지막 날이어서 다이몬요코쵸나 선술집에 가서 조촐히 나마비루 한 잔에 간단한 안주로 저녁 먹으려 했는데 춥고 배고파서 앉은 김에...게다가 어제 아주 맛나게 먹어서 커리도 먹어보고파서 1번 커리를 시켰다. 이것도 꽤 괜찮다. 패스트푸드 같은 느낌이 아니네.


      

몸도 녹이고, 폰도 살아났고, 맛있게 먹어 배도 부르고, 이젠 슬슬 호텔로 돌아가야겠다. 트램 끊기기 전에. 

가는 길 골목골목도 예쁘다. 여기는 언덕 길이 참 많다. 눈이 많은 동네인데 이런 언덕에서 어떻게 매년 겨울을 날까...



밥먹으면서 지도에서 찾은 일본 최고 높이의 콘크리트 전봇대가 가는 길에 있길래 슬쩍 한 번 봐 주고... 전봇대 치고는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데, 전봇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이유로 뭔가 특이한 가보다 하고 촬영만. 투박하다.



트램 정류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도 모두 조명 장식을 해 놓아서 예쁘다.



거리의 눈을 한쪽으로 치워놓으면서 길가의 바닥 가로등이 눈 속에 완전히 파 묻혔다. 왠지 따뜻해 보여...




트램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서 하코다테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마지막 밤을 함께 할 오늘의 맥주. 개인적 취향으로 왼쪽 음료는 별로...


 


하코다테에서 이틀을 알차게 잘 놀았다. 소박하고 따뜻한 동네. 떠나려니 왠지 아쉽기도 하다.

내일은 다른 도시로 이동. 또 무슨 일이 펼쳐질까?




 

Posted by TravelGirl
2016. 2. 9. 19:19

※ 2015년 12월 29일. 여행 둘째날


하코다테 아침시장을 가기 위해 일찌감치 움직인다. 하루 더 머물 것이지만 방을 옮겨야 하는 이유로 짐을 다 챙겨들고 나왔다. 프론트에 짐을 맡기면서 하루 숙박비를 더 지불하려는데 어제보다 500엔이 내려갔다. 아싸~ 아리가또~!! 매일 달라지는 일본의 숙박비에 대해 잠시 잊었었나보다. 비싸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하코다테 아침시장은 하코다테 역 바로 옆에 있다. 역을 정면으로 봤을 때 왼쪽 주차장 너머로 있다. 어차피 하코다테 역을 지나가기에 하코다테 역 내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먼저 들러서 지도부터 구하기로 한다. 오늘의 하루종일 이동을 위해 트램 1일권도 사야하고, 나머지 여정의 이동을 위한 지정석도 지정해야 한다.


하코다테 역 앞의 조각상


먼저 트램 1일권 구입. 트램 1일권을 사면 유명 관광지나 쇼핑센터의 쿠폰을 준다해서 쿠폰북을 예상했는데 갱지에 인쇄된 종이 한 장을 준다. 정녕 이것이 쿠폰이라는 거임? 알고보니 이것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소와 내역의 목록이고 그 곳에 가게 되면 1일권을 보여주면 된다. 어느 곳에서는 기념품 엽서를 주기도 하고, 입장료를 5~10% 할인을 받을 수도 있으니 챙기면 도움이 된다.


 

트램 1일권을 샀다면 꼭 할인혜택을 챙기자. 기념품은 별 것 없지만 입장료 10%는 꽤 크다.


 

                 트램 1일 티켓                                     트램 1일권 소지자에게 주는 혜택 목록


트램 1일권은 조그맣고 빳빳한 종이티켓이다. 안쪽에는 스크래치 경품 행운권처럼 숫자들이 들어있다. 사용할 날짜의 년/월/일을 긁으면 그 날짜에만 쓸 수 있다. 트램에서 내릴 때 기사에게 보여주면 된다. 어차피 1일용/1회용인데 돈 많이 안 들이고 패스를 만든 인본 사람들이 참 실용적이라는 생각이다.


 

2015년 12월 29일에 사용. 이런 것은 10원짜리로 긁어줘야 제 맛이기에 굳이 1엔 동전으로 긁었다


온천 정보도 수집. 둘째날에 노보리베츠에서 온천하고 숙박하려 했었는데, 하코다테에 하루 더 있게 되는 바람에 계획했던 노보리베츠 온천을 즐길 시간이 애매하다. 온천이 노보리베츠에만 있나? 하코다테에도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유노카와 온천(湯の川溫泉)을 가기로 했다. 노보리베츠에 가서 시간되면 또 하면 되지, 뭐. Information에 문의해서 숙박을 하지 않고도 온천만 즐길 수 있는 온천욕장의 목록과 지도를 받았다. 선택 기준은 노천탕이 있으면서 트램 정류장에서 가까운 곳. 저녁에는 꼭 야경을 보러가야 하니까 너무 깊이 가면 안된다. 입구에 있는 타쿠보쿠테이로 잠정 확정.


다음 여정을 위한 교통패스 좌석도 지정. 어젯밤에 대략 짜놓은 일정대로 일단 좌석을 지정한다. 내일 오전 10시쯤으로 여유있게 가고 싶었는데 이미 만석이라 지정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찍 움직이기로 한다. 이로써 이동 경로 확정. 좌석 지정한 편을 못 타더라도 다른 열차를 자유석으로 탈 수 있으니 여정은 얼마든지 변경 가능하다. 그다지 빡빡하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지정석 티켓. 나머지 여정의 이동 일정 확정


준비 할 것 다 했으니 관광객 모드 시작. 우선 가까운 아침시장부터 시작한다.

아침시장은 수산시장이다. 아침식사를 하는 관광객들도 많이 보이는데, 저런 밤에 술안주로나 먹을 해산물로 아침을 시작하다니.. 





하코다테와 홋카이도의 명물 게. 털게는 물론 온갖 종류의 게들이 다 있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1층 상점에서 고르고 회, 구이 등 요리를 주문하면 건물 2층에 있는 식당 자리로 배달해 줘서 앉아서 먹을 수 있다. 해산물은 어디 가나 비싸긴 한데 여기는 상대적으로 살짝 저렴하다. 저 크기에 저 무게에 저 가격이면 훌륭하지.

저거 한 마리 맛보고 싶긴 한데 아침부터 관광객들 사이에 혼자 앉아서 저만한 게 뜯기가 참... 나홀로 여행의 단점이다 ㅡㅡ;; 내 언젠가 단체로 다시 가서 꼭 먹어볼테닷!




 


이미 팔린 놈인지 큼지막한 게를 들고가던 아저씨가 사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 주신다. 크긴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예 저울 위에 올라앉혀 놓은 모델(?) 게도 있다. 한 마리에 2.56 Kg. 저 위에서 꿈틀대는 몸부림이... 쩝...짭짭...쩝...냠냠...



블로거님들 사이에서 유명한 키쿠요 식당. 이 곳의 삼색덮밥이 아주 유명하단다. 연어알(이쿠라)과 성게내장(우니)와 게살/새우/가리비 등을 덮은 덮밥인데 연어알, 성게내장이 나에게는 둘 다 내키지 않는 음식이라 먹어볼까말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접었다. 아무리 여기에서 특별하다 해도 도저히 먹을 자신이 없다. 나에게 해산물은 참 적응이 안되고 도전하기 힘든 존재 ㅡㅡ;;.  

 

 


시장 내부에서는 건어물이나 절임생선, 젓갈류를 팔고 있다. 맛보고 사라고 불러 주시는데 저걸 여행 내내 들고 다니다가 들고 들어올 수 없으니 패쓰. 




여행을 하면서 물건을 잘 사지 않는 편이고, 또 배낭을 메고 다니다 보니 짐 늘어나는 것이 싫어서 특히 여행 초반에는 기념품도 잘 안 사는데 이 미니어쳐 마그네틱 덮밥들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새우가 올려진 삼색덮밥으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너무 귀엽고 완전 맘에 들어~!



아침시장을 빙빙 돌았는데 여기서 유명하다는 해산물로 만든 음식들이 아침식사로는 다소 부담스런 느낌이기도 하고, 내가 먹지 못하는(or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해물 재료로 된 음식이 너무 많다. 딱히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또 다른 하코다테의 맛집 아지사이(あじさい) 라멘을 찾아가기로 한다. 아지사이 라멘은 교로카쿠공원(五稜郭公園) 근처에 있다. 


교로카쿠 공원으로 가려고 하코다테 에키마에(函館驛前) 트램 정류장에서 트램을 타려는데 헉! 트램이 운행을 안 한단다. 트램 1일권도 샀는데!!! 트램 직원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열심히 설명을 해 주시며 승객들을 한쪽으로 안내하신다. 눈만 멀뚱멀뚱 어째야 하나 하고 서 있었더니 아저씨가 설명해 주시려다가 내가 일본어를 모르니 당황하신다. 아저씨가 몇 단어 섞어 주시는 영단어와 내가 몇 개 알아듣는 일본어와 정황 근거를 바탕으로 트램 탈선사고가 나서 구간 폐쇄되었다는 것까지는 파악했다. 그 다음은? 아저씨가 한쪽을 가리키며 버스를 타라는데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지,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 건지, 야심차게 산 트램 1일권이 이러한 상황에서는 버스에서도 통용되는지 전혀 감이 안 온다. 답답해 하던, 그러나 끝까지 친절했던 아저씨가 내 옆에 서 있다가 안내받고 저쪽으로 가고 계시는 어르신을 가리키며 저 분 따라가란다. (이런 건 잘 알아듣네... 기특하게도...) 어르신을 따라 건너편에서 조금 내려가니 버스가 한 대 서 있다. 알고보니 폐쇄된 트램 구간을 대체하는 버스였다. 굉장히 빠른 대응에 은근히 놀랐다. 하긴...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이런 일이 흔하게 생기겠지... 타기 전에는 시내버스인가 싶어서 요금을 내야하는지 고민하다가 앞사람을 그대로 따라하기로 했다. 대체 버스는 공짜. 가다보니 트램이 눈에 미끄러져 탈선해 있고 복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폰 꺼내서 사고 사진찍는 관광객들... 제발 이러지 좀 말자고요!!!!!!! 버스는 교로카쿠코엔마에(五稜郭公園前)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후 구간은 트램이 정상 운행하고 있었다. 


건너편 백화점에 들어가서 WiFi를 잠깐 붙여서 아지사이 라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고고.


교로카쿠 타워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아지사이 본점은 이미 줄이 쭉 서있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났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많다. 매장이 2층인데 1층부터 줄 서있다. 어지간해서는 줄서서 먹지 않는 나이지만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먹으려는 사람들을 보니 궁금해서 나도 줄을 서 보았다. 다행히 생각보다 줄은 빨리 빠져서 약 15분 대기 후 먹을 수 있었다.





하코다테에서 시작한 아지사이 라멘은 이제 홋카이도 전역으로 몇 개의 매장을 확장했다고 한다. 그래도 많지는 않다. 치토세 공항에도 있으니 하코다테까지 가지 못한 관광객은 공항에서 맛 볼 수 있겠다.


아지사이 라멘 홋카이도 내 매장 위치


혼자 온 손님들은 주로 창가나 바 스타일의 좌석으로 안내를 받는다. 교로카쿠 타워와 바깥 풍경이 보이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건너편에 럭키삐에로가 보인다. 



여기는 시오라멘(しおラ-メン, 소금라면)이 유명하다. 맑은 국물의 라면인데 약간 짭짤하긴 하지만 시원하고 깔끔하다. 일본라멘을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그 목록에 시오라멘 하나 추가.



라멘을 먹고 있는데 또 눈이 펑펑 내리고 바람이 쌩쌩 분다. 밖에는 눈이 많이 오고 창밖을 보면서 따뜻한 국물을 먹어서 훈훈하고 뿌듯하여 조금 더 앉아서 바깥구경 하고싶었으나, 대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 먹고도 앉아 있기가 괜히 미안해서 서둘러 나왔다.


건너편은 바로 교로카쿠공원(五稜郭公園)과 타워(교로카쿠공원(五稜郭タワ―). 교로카쿠는 에도시대 말기에 일본 최초로 유럽식으로 축조한 별모양의 성곽이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의미를 두고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배경에 따라 만들어진 성곽도시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인지 교로카쿠 축조 배경이나 의미를 찾아보면 교로카쿠 자체에 대한 의미보다 하코다테 개항 역사부터 하코다테와 교로카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흐름과 이 곳에서 발생했던 사건에 관한 내용이 더 많다. 


원래 공원을 산책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펑펑 내리는 눈보라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다. 공원은 별모양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별은 커녕 눈앞도 보이지 않는다.




공원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갔다. 물이 다 얼어있다. 이 수로가 위에서 보면 별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데 도저히 전체 모양을 가늠할 수가 없다. 





눈이 이만큼 내렸다. 쌓인 눈이 발목 위로 우습게 올라온다.



갑자기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공원의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타워로 돌아온다. 실내에서,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훨씬 낫겠다. 거금(?)을 들여 타워 입장권을 끊었다. 트램 1일권을 보여줬더니 기념품 엽서 1장 준다.


교로카쿠 타워 입장권


타워 위에 올라가면 공원의 전체 전경이 보여야 하는데... 눈이 어찌나 내리는지 전경도 뿌연 눈보라 속에 덮여있다. 그래도 별 모양이라는 것은 확실히 보인다. 흐린 날의 뿌연 별 ㅡㅡ;;


 



타워 전망대는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 올라갈 때 엘레베이터를 타면 윗층으로 데려다 주고, 내려오려면 한 층 내려와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전망대에는 교로카쿠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소개하고 전시하고 있다. 한참을 둘러보아도 전망은 눈보라에 막힌 시야에 깨끗하지 않아서 이제 내려가야지 하고 한 층 내려오는 동안 눈이 멈추었다. 이제서야 바깥이 깨끗하게 보인다. 아... 진짜 정확히 별이구나...



아래 층 전망대에는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타워 아래쪽이 보이는 곳이 있다. 저~~~~ 밑에 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옆에 중국인 관광객 두 명이 여기에 올라서지 못해서 서로 놀리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하고 있다. 고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나에게 공포증이 없음에 감사. 여기에서 발올리고 사진찍고 돌아서는데 이 분들이 내가 부러웠다보다. 바들바들 떨면서 올라가서 서로 인증샷 찍어주신다. 처음이 어렵지 별 것 아니랍니다~ 충분히 안전해요ㅎㅎ.



이제 타워에서 내려와서 입구에 서 있는 귀여운 이 아이들에게 인사하고...바이바이~... 타워를 벗어난다.



나중에 알았는데 겨울에는 야간개장해서 밤이면 저 별 모양에 조명이 들어온단다. 눈 속에 파묻힌 모습도 나름 괜찮지만, 눈에 조명을 더한 야경이 훨씬 예쁠 것 같다. 사진이나 엽서에서 보는 4계절 중에는 벚꽃이 예쁘다. 벚꽃 활짝 핀 날에 오면 진짜 감동할 것 같다. 언젠가 벚꽃피는 날 한 번 더 오기를 희망한다.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


다음 일정은 온천. 야경을 맞이하기 위한 목욕재계라고나 할까. 일단 유노카와 온천(湯の川溫泉)으로 가야 한다. 아까 트램 내렸던 곳으로 돌아와서 다시 가던 방향으로의 트램을 탄다. 하코다테 역에서 오는 트램은 교로카쿠를 거쳐 유노카와까지 간다. 

온천 간다~!!! 

Posted by TravelGirl